10대를 넘어 20대에 들어선 우리. 찬란한 젊음을 꿈꿨지만, 그러기에 20대는 청하지 않은 손님들이 너무 많은 나이였다. 고함20은 토론을 통해 20대가 모두 공감할만한 20대의 '불청객' 을 선정했다. 첫번째 기사는 우리를 대학이라는 초원에 던져버린, '졸업' 을, 두번째 기사는 20대라면 적극 사용하면서도 한편으로 짜증을 내고 있을 'SNS' 를, 세번째 기사는 20대 초반에 커다란 구멍을 만들어놓는 '영장' 이라는 불청객을, 네번째 기사는 20대의 마음에 찾아드는 불청객 '자격지심'을 테마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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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손에는 꽃다발을, 왼쪽 겨드랑이에는 졸업장을 끼고 학교 교문을 나선지 2달이 지났다. 겨울끝자락을 장식하듯 앙상한 나무만 가득했던 그때와는 다르게 어제 오늘의 길거리에는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하지만 잠시 가던 길을 멈춰 봄의 생명을 감상할 여유도 없어진 지금의 우리에게 ‘졸업’은 어떤 존재일까. 들뜬 마음으로 10대라는 명찰을 떼고 20대의 세상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 이렇게 큰일인 줄을 그때 우리는 몰랐다.


졸업, 20대에 첫 발을 들이다.

떨리는 가슴으로 첫 강의를 듣던 순간이 어제 같은데 벌써 중간고사를 끝내고 집으로 귀가했다. 그리고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다. 그리고는 새삼스럽지만 잔인하게 묻는다.

"뭐가…….변한거지?"

겉모습이 변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거울 속 자신, 그 속 깊이를 한번 비춰보자. 또 다른 굴레에 올라탄 느낌이다. 취업준비, 스펙 쌓기, 등록금 마련……. 졸업 전 순수했던 고민들과는 다른 한 차원 위의 고민들이다. 졸업이라는 기점 하나를 통과한 우리는 어느새 사회의 암울함이 물씬 풍겨오는 그런 고민들을 지게 되었다. 이럴 때 과연 졸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지 의문이 든다. 다음 세상의 문을 열어주는 졸업일까 아니면 다음 세상으로 떠미는 졸업일까.

졸업, 과연 밝은 미래의 시작?

졸업 그 자체의 이미지에서는 홀가분한 느낌이 드는 것은 20대의 명찰을 달기 전이었다. 지금 20대의 명찰을 가슴에 꽂은 우리에게 밝은 미래를 그려나갈 우리에게 첫 과제가 내려졌다.

‘대학 생활 계획서’

정말 쓸 것이 많다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쓰다보면 옆 친구들과 똑같은 내용을 쓰는 자신을 발견할거다. 여행가기, 해외봉사하기, 활발한 동아리활동 등등 새내기의 꿈과 희망이 담긴 지극히 이상적인 리스트들이 대다수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다. 정말 파릇파릇한 청춘에 걸맞은 계획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실제 이런 리스트들의 실현 가능성은 상당히 적은 편에 속한다. 왜일까. 졸업까지 했는데 이런 것도 못하냐고 소리를 질러도 안 된다. 왜냐면 잔인하게도 그 결정을 스스로 내리기 때문이다. 울며 겨자 먹기 아니, 이보다도 좀 더 어두운 표현을 써야 지금 상황에 어울릴 것이다.

그토록 이상적이었던 계획들이 어떻게 변했나 보자. 먼저 봉사활동을 보면 대다수의 활동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부분에 치중한 것들이다. 기왕이면 해외로, 멀리, 오래, 많이. 센스가 있다면 사진과 같은 첨부자료는 필수이다.

이번엔 여행을 보자. 그런데 여행이 좀 특별하다. 여행이 아닌 연수이기 때문이다. 맞다. 어학연수이다. 여행 다니면서 기왕이면 다른 나라 말 하나정도 배워주면 참 좋다. 거기에 훗날 자기 소개란에 한 줄 멋지게 써놓을 수 있는 점도 상당히 만족스러운 점이다.

여기까지만 봐도 뭔가 자신의 이상과는 다르다는 괴리감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맙소사. 한탄을 해도 늦었다. 이미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런 점을 너무나도 사랑하기 때문이다. 경력이 한 줄이라도 더 채워지면 경쟁자들 수백 명을 앞서갈 수 있는 세상이기에 우리 스스로 변해버린다. 줄이 세워지면 조심스레 그 줄에 서려고 힘쓰며 호시탐탐 여기저기 기회를 엿본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찼던 새내기가 이렇게 바뀌는데 얼마나 걸릴까. 그리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졸업으로 발을 들인 사회 자체가 바로 이런 사회니까 말이다.


낯선 세상에서 우리를 맞이한 건 ‘책임’이었다

힘겹게 대학생활에 적응해가는 자신을 돌아보면 홀로 사바나 초원에 던져진 임팔라 한 마리 같다. 하루하루 많은 과제들을 처리하다 보면 하늘엔 달이 떠있기 일쑤다. 과연 도대체 무엇이 자유에 몸부림치는 우리 대학생을 관리하고 움직이는가? 그것은 교수의 관리도 부모님의 잔소리도 아닌 ‘책임’이라는 놈이었다. 물론 대학생으로써 내 행동에 책임을 진다는 점은 상당히 이상적이면서 멋지기까지 하다. 하지만 새내기들에게 ‘사회에서의 책임’이라는 존재는 생소하고도 낯설다. 이전의 책임은 맡은 바 역할에 최선만 다하면 되는 정도의 책임이었다. 즉, 학교든 학원이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거였다.

반면, 졸업 이후의 책임은 색다르다.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엄습해오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과제를 포기하는 행위에 책임을 져야 하며 아침을 거르고 등교하는 일에도 책임을 져야 한다. 이처럼 오늘의 행동 수천가지에 모두 책임이라는 스티커가 달라붙는다.

그렇게 스스로의 책임과 간섭에 우리의 대학생활은 점점 지쳐진다.

졸 업

대학생은 자기 안의 꿈을 키우고 자신을 가꾸는 청년이다. 물론 가식적이라는 비난을 피할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10대의 명찰을 떼면서 이 정도의 생각을 지니는 건 그만큼 사고가 건강하다는 뜻이 아닐까 싶다. 우리의 새 20대에 부푼 기대를 거는 것은 새해를 시작하는 것만큼 아름답고 가슴 떨리는 일이다...여기까지가 3월 이전의 생각이다. 그렇다. 졸업의 의미를 깨닫기 전이다. ‘끝낸다.’는 생각으로 준비하고 맞이한 졸업을 ‘시작한다.’라는 생각으로 각오를 했어야 했다. 사회는 너무 차갑다. 우리를 감싸 안아주던 학교는 이제 우리를 떠나보냈다. 취업과 같은 과제들이 대학생활들을 점령하고 있고, 처음 맞는 책임이라는 존재에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20대’. 아직 우리는 어리고 싶다. 우리를 사회로 밀어버리는 ‘졸업’이라는 불청객이 우리는 너무 밉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