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 있어?
- 아뇨, 아직 없는데요.
그럼 내가 소개팅 해줄까?
- 아, 전 소개팅 같은 건 좀 싫어서......괜찮아요.

어머, 얘, 너 그러다 연애 계속 못 한다? 혹시 너 남자친구 사귄 적 한 번도 없어?

얼마 전 학교 카페에서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 두 명의 대화를 들었다. 사실 특별할 것도 없는 이 대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지 않은가? 다들 한 번쯤은 누군가에게 ‘여자(혹은 남자)친구 있어?’, ‘소개팅 할래?’ 와 같은 질문을 해 본 적도, 그리고 질문을 당한 적도 있을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건넨 이러한 질문들에서 우리 안에 ‘커플’이 얼마나 ‘당연한 상태’로 생각되고 있는지 새삼 느낀다.

"그럼 지금 서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겨서 짝을 짓는 행태가 당연하지 않다는 건가요?" 아니, 당연히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형태의 ‘연애’가 우리 사회에 자연스러운 것으로 자리 잡은 지는 고작 오십년이 조금 더 되었다. 그 전에도 물론 사랑의 감정은 당연히 존재하였으나, 그렇다고 모두가 연애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결혼과 분리되어 있던 연애는 근대에 들어서, 결혼을 하기 위한 과정 중의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오랜 세월 결혼이라는 제도가 누려왔던 주류 가치에 연애 역시 편승하게 된 것이다. 연애하는 자는 사회에서 주류로서 더 대접을 받게 되었으며, 그렇지 않은 일명 ‘솔로’들은 사회적으로 그 지위가 격하되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경향은 점점 더 가속화 되었다. 그리고 이 커플중심사회는 이러한 솔로들을 ‘치료’하기 위해 사회전방위적으로 여러 가지 처방과 시술을 행한다.




서점의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는 수많은 연애지침서들은 연애를 하려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제각각 충고하며 어서 빨리 커플이 되기 위해 노력하라고 솔로들을 추달한다. 휴대폰 통신사의 커플요금제나 극장의 커플 할인, 커플 팝콘 세트, 식당의 커플세트와 같은 것들은 모두 이 사회의 주류인 커플들에게만 주어지는 혜택으로, 솔로들을 배제한다. ‘이 옷만 입으면 소개팅 필승!’이라는 온라인 쇼핑몰의 광고 문구, 이성친구가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자연스럽게 ‘소개팅 해줄까?’, ‘쟤는 어떠니?’ 라고 물어보는 주변 사람들, 인터넷에 떠도는 수많은 애교 혹은 매너 스킬들. 모두 솔로를 벗어나 더 나은 상태, 즉 커플로 나아가라고 직간접적으로 압박한다.

대학생 이모씨(23, 여)는 전에 아르바이트하던 곳에서 한 번 남자 친구가 없다고 말했더니 틈만 나면 여자 친구가 없는 다른 알바생과 자신을 ‘엮으려는’ 시도 때문에 큰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고백하였다. “아니, 아무리 싫다고 해도 다들 잘해보라면서 계속 그러는 거에요. 나중에는 이 사람들이 나를 놀리나 싶을 정도로 너무 짜증이 났어요.” 솔로들은 이런 분위기에서 종종 무능해서, 아직 뭘 잘 몰라서, 혹은 미성숙해서 그런 것이라며 뭔가 모자란 인간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주위에서 계속 권하는데도 끝까지 커플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성격이 괴팍하고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고 여겨지며, 쉽게 놀림거리와 뒷담화의 대상이 된다. “사실 제가 솔로인 게 저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거든요? 그런데 괜히 크리스마스에 뭐해? 이런 질문에 혼자 찔려하고, 좀 움츠러들기도 하고. 사람들 시선만 아니면 정말 100% 아무 신경도 안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솔로는 이 커플 중심 사회에서, 충분히, 사회적 소수자다.


‘모태솔로’. 이는 연애 안하는 사람에 대한 수많은 압박의 끝을 잘 나타내주는 말이다. 모태솔로는 엄마 뱃속에서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커플이었던 적이 없었던 사람을 일컫는데, 작년 큰 인기를 끌었던 개그코너인 ‘솔로천국 커플지옥’의 유행어에서 비롯했다.

이 말이 등장하면서, 지금까지는 그냥 ‘사귄 경험이 없었던 사람’으로 풀어서 설명하던 상태를 ‘모태솔로’라는 굉장히 자극적인 이름으로 정의하게 된다. ‘커플>사귄 경험은 있지만 지금은 솔로>>>>>>넘사벽>>>>>모태솔로’ 라는 커플사회의 최하위 계급에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매스미디어를 통해 솔로에게 가해지는 공격과 폄하는 전방위적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박히게 된다. 그리고 모태솔로라는 단어는 특히나 개그프로에서 탄생한 배경 상, 희화화의 대상이 되어 아무런 고민이나 거리낌 없이 모든 연령대에게 받아들여졌다.

지식in에 ‘모태솔로’라는 단어를 넣어보면, “초등학교 5학년인데 모태솔로에요ㅠㅠ 어떻게 하지요?”부터 시작해서, ‘복학하면 모솔 벗어날 줄 알았는데, 안 생겨요’, ‘27살 모태솔로 여자, 남자 분들 어떻게 생각하세요?’ 와 같은 글들이 수없이 검색된다. 솔로에 대한 공포심이 거대한 하나의 조류가 되어버린 것이다. 단순히 웃고 넘길 수 있는 유행어를 넘어서, 개인의 내면까지도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심지어 초등학생들까지도 말이다.

이렇게 폭력적인 희화화와 조롱, 억압을 통해서 더 많은 솔로들이 어서 정신을 차려서 커플이 되도록 하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을까? 솔로들이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비단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눌 동반자가 없어서 뿐만은 아니리라. 바로 그 솔로에게는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할 이가 없을 것이라는 추측, 그리고 그 이유는 그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일 거라는 시선들이 그를, 또 우리를 더욱 불행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