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밥 그릇 뺏는 짓” 고개는 끄덕여지지만 이성적으로는 “글세”


한나라당과 오세훈 서울시장이 사활을 걸고 있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일이 다가오고 있다. 오는 24일까지 이제 며칠이 남았을 뿐이다. 서울시 곳곳에는 주민투표 참가를 독려하는 광고가 실리고 포스터가 붙여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선거법 위반이라는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1인 시위까지 하고 나섰다.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로 “복지포퓰리즘을 경계해야 된다”는 말을 연거푸 내뱉고 있다.

 

문제는 주민투표가 경우에 수에 있어선 서울시 교육청·민주당보다 서울시·한나라당에 유리한 모양새를 띄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시·한나라당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투표율 33%만 넘기면 서울시·한나라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33%가 낮은 숫자는 아니지만 주민투표 문제가 계속 화두가 됐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서울시민들의 관심이 집중 될 수밖에 없다. 적극적 투표층이 반대편에 집중돼있다는 것도 서울시 교육청·민주당이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다. 


애들 밥 그릇 뺏는 짓 vs 시스템으로 해결하자 

서울시 교육청·민주당은 전면 무상급식을 실시해야 하는 이유로 감성적인 근거를 내세운다. 교실 내에서 급식비,를 지원받는 아이들이 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게 그들이 말하는 이유이다. ‘그 아이들의 아픔을 한 번 생각해보라’는 식이다. 여기에 서울시·한나라당은 “시스템으로 해결 할 수 있다” 반박한다. 아이들에게 직접 가난을 밝히게 만드는 현 제도를 자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만들면 된다는 것이다. 복지선진국이라는 유럽에서도 이 같은 시스템을 갖추고 효율적으로 재정을 운영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예를 내놓으면서 말이다.

“토건·전시행정에 들이는 수 천 억의 비용은 안 아깝고 애들 밥 먹이는 수 백 억은 아깝다는 거냐”는 것도 서울시 교육청·민주당 내세우는 주장 중 하나다. 오세훈 시장의 ‘디자인 서울’ 정책으로 생긴 많은 건축물들이 수요가 적고 많은 부채를 떠안고 있어 이 주장은 설득력 있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국민들이 그렇게 받아 들이냐는 것이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눈에 보이는 건설물들이 보이지 않는 복지보다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게다가 많은 국민들은 세금을 ‘폭탄’으로 여기고 있다. 서비스업에 종사하고 있는 홍 씨(49)는 “국가에서는 해주는 것도 없으면서 내가 번 것들을 뺏어 가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 같은 분위기에선 서울시 교육청·민주당의 승리는 장담할 수 없다. 그들이 내세우는 주장과 근거가 서울시민들에게 와 닿지 않기 때문이다. 차별을 당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서울시·한나라당의 논리에 다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도 있다. 이런 지적들은 무상급식을 찬성하는 쪽에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현실적인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다시 경제위기가 닥칠지 모르는 지금 “서민들 세금으로 부자집 아이들 밥 먹이는 짓”이라는 주장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다. 감정적인 부분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이야기다.


투표 불참하면 나쁜 투표... 진짜? 

투표하지 말자’는 구호가 ‘민주주의에 위배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계속해서 일관된 주장을 하는 이유이다. 진보지식인들 또한 ‘나쁜 투표 거부’ 전파에 동참하고 있다. 시사IN 고재열 기자는 자신의 트위터에 “투표함 미개봉 또한 유권자의 권리”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같은 주장은 결국 투표에서 승리할 자신이 없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민주주의적 가치에서 투표에서 더 많은 표를 얻었을 때 무상급식이 더 큰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직장인 박지연 씨(26)는 자신의 트위터에 “투표하지 말라는 민주주의는 뭐냐?”며 “전면무상급식 실시에 투표하라면 되지”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 같은 지적이 타당성 있는 이유는 주민투표가 이미 80여 만 명의 서명을 거쳐 발의됐기 때문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서명에 위조나 도용 등의 문제가 있다며 법원에 무효소송을 걸었지만 기각된 상태다. 법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주민투표에 참여하지 않으면 나쁜 투표가 된다는 주장에도 문제가 보인다. 투표 자체를 심판한다면 발의에 동의한 80여 만 명 또한 ‘나쁜 시민’이 되기 때문이다. 혹시나 후에 민주당과 서울시교육청이 주민투표 발의의 당사자가 된다면 역풍을 맞을 가능성 또한 존재한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하면 로맨스’라는 비난은 지금도 산재해있다.


진정 절실함이 있다면 

이처럼 이성적인 논리와 접근 방법 같은 고민이 없는 감정적인 레토릭은 무너질 가능성이 크다. 서울시 교육청·민주당에게 투표 전망이 밝게 만은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다. 이들에게 정부와 한나라당이 제시한 차등장학금 정책에 대한 강남훈 한신대 경제학과 교수의 지적은 괜찮은 해답이 될 수 있다.

강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서 “차등장학금을 가정할 경우 소득구간별로 경계선상에 있는 가구들 사이에서 450만 명 정도가 불공정하다고 느끼게 된다”고 밝혔다. 거기에 “소득으로 기준으로 차등을 두는 것 자체가 공평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소득은 없지만 자산이 많은 가구도 있다”고 덧붙였다. 강 교수의 말은 무상급식 문제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 서울시·한나라당의 안이 소득 하위 50%를 가정하는 차등 지원 방식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대한민국 역사에 한 획을 그을지도 모른다. 주민 스스로 정책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진정한 민주주의에 한 발 다가선 일이다. 또한 전면무상급식 안이 표를 얻는 것은 복지재정 지출에 동의 한다는 얘기다. 반대로 차등무상급식 안이 득표한다면 타 시·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전면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는 곳도 과거로 회귀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만큼 이번 주민투표는 큰 의미를 지닌다. 그 의미를 알고, 진정 절실함이 있다면 전면무상급식을 지지하는 이들이 ‘애들 밥 그릇’이 아니라 충분히 다른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무상급식에 대해 오래, 진지하게 고민을 해왔다면 말이다.

시간은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