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주와 롯데가 계약하고, 일방적인 통보만 했다
5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 그때는 자존심 때문에 버티고
성원해주는 고객들에게 감사,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예정





“건물주와 롯데가 계약을 하고 우리에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리치몬드과자점 홍대점이 1월 31일부로 문을 닫는다. 홍대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빵집으로서, 홍대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은 이곳이 갑작스레 문을 닫는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했다. 그리고 문을 닫는 이유가 경영상의 어려움이 아닌, 건물주와 롯데와의 계약 때문인 것이 알려지면서, 마침 대기업의 요식업계 진출이 비판받는 이 시기에 상당한 파장이 예상된다. (트위터 아이디 @urban_lab에 의하면 리치몬드과자점 홍대점 자리는 현재 ‘주식회사 롯데리아’로 전세권이 설정되어 있다고 한다.)

남편 권상범 명장과 함께 리치몬드과자점(이하 리치몬드)을 이끌고 있는 김종수 대표는 고함20과의 인터뷰에서 “건물주가 롯데와 계약하고 난 뒤, 2011년 4월 내용증명서를 보내 사실상의 계약해지 통보를 해왔다. 건물주와 제3자가 계약을 하면서 임차인인 나에게는 아무 말도 안 한 것이다.”라며 리치몬드 홍대점의 폐점이 외부에서의 압력이 작용했다는 것을 밝혔다.

84년부터 약 30년 동안 이 자리를 지켜온 김종수 대표는 “건물이 처음 생길 때 들어와서 수도꼭지 배치까지 전부 내 손으로 한 곳이었다. 비록 건물 주인은 아니지만 내 집처럼 평생 여기서 가게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며 아쉬움을 강하게 드러냈다.

리치몬드과자점은 성산본점, 홍대점, 이대 ECC에 있지만 사실상 홍대점이 가장 주가 되는 곳이다. 리치몬드는 홍대점을 기반으로 시작했고, 이곳에서 소위 ‘3대 베이커리’로 불리는 대중적 명성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리치몬드의 전통을 이어나간다는 점에서도 홍대점은 중요한 곳일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리치몬드 홍대점은 2010년 10월에 리모델링까지 하면서 계속해서 이곳에서 제과점 운영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거액을 들어서 (리치몬드 측은 3억 5천이라 밝혔다.) 리모델링을 한 것이 무색하게 1년 3개월 만에 문을 닫게 된 것이다. 김종수 대표는 이에 대해 “적어도 다른 곳과 계약을 할 것이라면 리모델링을 하지 말라고 해야 할 것 아니냐” 며 분통을 터트렸다.

또한 그는 과거에도 이런 종류의 유사한 일이 있었다고 털어 놓았다. “5년 전에는 파리바게트와 건물주가 계약을 했다. 그때는 같은 업종이 들어서는 것이 자존심이 상해 파리바게트 측에서 제시한 조건인 ‘보증금 100%와 월세 120% 인상’을 우리가 해주겠다고 하고 장사를 계속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니 인연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롯데 기업에 대해서도 불만을 표시했다. “롯데에서 미안하다는 소리는커녕, 아예 연락조차 하지 않았다. 롯데에 대한 반감이 생기는 것 같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남이 키워놓은 사업이 아니라, 창조적인 것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제 2월부터는 리치몬드 홍대점 자리에는 엔제리너스 커피가 들어서게 된다. 롯데 계열 제과점 보네스뻬나 크리스피 크림도넛이라는 말도 떠돌았으나 김종수 대표가 ‘제과제빵업계는 향후 5년간 들어오지 못한다.’는 각서를 건물주로부터 받았기 때문에 입점이 불가능해 보인다.

엔제리너스 측에서는 “밀어낸 것이 아니다”라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으나, 리치몬드 측이 주장하는 것처럼 사전에 리치몬드와의 조율 없이 계약을 맺은 것이 맞다면 논란이 가중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도 리치몬드는 계속돼… 아쉽지만 손님들에게 정말 고마워
 

“중개업자가 와서 나보고 롯데만큼 돈 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래서 어디 롯데에 비교하느냐고 화를 엄청 냈다. 우리는 최소한 빵 분야에서는 롯데보다 더한 자부심을 갖고 있고, 그들보다 훨씬 제대로 만들 수 있다. 빵만큼은 롯데와 비교할게 못된다.”

김종수 대표의 말이다. 홍대리치몬드는 없어지지만 리치몬드 빵에 대한 자부심은 여전했다. 그는 “지금 여기서 낙담할 수 없다. 자부심을 잃지 않고, 빵을 계속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알지도 못했던 ‘트위터’라는 매체를 통해 리치몬드 제과점이 없어지는 것에 아쉬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며, “장사꾼으로 변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더욱 굳건히 하게 됐다.”고 밝혔다.

리치몬드 빵으로 제과제빵 명장에 오른 권상범 명장은 “자리를 지키지 못해 손님들에게 미안하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섭섭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지만, 누구 원망할 것도 없고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겠다. 빵을 만들어서 손님들에게 이렇게 사랑받을 줄 몰랐다.”며 앞으로 손님들한테 가까이 갈 수 있는 장소에 다시 가게를 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손님들도 아쉬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리치몬드 홍대점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듣자 많은 사람들이 가게에 몰려들었다. 리치몬드에서 빵을 자주 사먹었다는 홍대생 오지혜씨는 “개인적으로는 자주 가는 빵집, 추억이 있던 곳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쉽고, 학교 교수님들도 상당히 아쉬워하고 계시다. 개성 있는 곳이 이렇게 사라지고 획일화된 프랜차이즈가 들어오는 것이 살짝 거부감이 든다.”고 말했다.

자신을 이화여대 윤 교수라고 소개한 60대 여성은 “30년 단골이고, 이곳과 나는 같이 커 온 것이나 다름 없다. 기념할 일이 있을때마다 여기 빵을 사먹었다.”며 추억이 깃든 곳임을 강조했다. 또한 “여기는 빵 문화를 만든 곳이다. 빵의 질도 좋고, 유리에 진열되어있는 빵을 주문하는게 아닌, 자신이 직접 빵을 고르게 하는 문화도 리치몬드부터 시작되었다. 가깝게 ECC나 성산동이 있지만, 가까운 곳에서 빵을 접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아쉽다.”며 좋은 빵집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이야기했다.

제빵업계를 프랜차이즈가 장악하여, 장인이 직접 만들고 가업으로까지 이어가게 하는 제과점이 드문 현실에서, 리치몬드 홍대점의 폐업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쉬움과 허탈감을 안겨주었다. 한국에 8명밖에 없는 제과제빵 명장이 운영하는 제과점도,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의해 물러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리치몬드가 없어진 그 자리에서 먹는 프랜차이즈 매장의 커피는 유독 씁쓸한 맛이 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