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C. 이니셜만 딴 줄임말이지만 하도 오랫동안 쓰이고 있는 데다 널리 퍼져 있어 두 글자만으로도 대단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이 되었다. Campus Couple의 약자인 CC는 과거에도 그랬고 요즘도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이다. CC에 대한 많은 담론(?)들이 오가지만 여전히 주변의 몇몇 커플은 CC이기 마련이다. 20대가 만들어가는 여러 가지 관계 중 하필 CC를 입에 올리게 된 이유? 그건 내가 바로 CC이기 때문이다.

 솔직한 얘기로 나는 CC에 대해 아무 생각이 없었다. 부정적인 반응이 대세였지만 거기에 휩쓸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CC를 마냥 반갑게 맞지도 않았다. 핑계처럼 들리겠지만 좋아하고 놓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것뿐이었다. 그래도 나 역시 겁 많고 소심한 사람인지라, CC에 대해 거의 관습처럼 떠도는 안 좋은 이야기들과 부작용을 아예 무시할 수는 없었다. 오히려 귀가 얇은 편인지라 처음엔 정말 지독하게 골머리를 앓았다. 하지만 인연이 좋게 닿아서인지 얼마 전 400일을 넘겼다. 
 
 제대로 된 CC 염장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나라의 부름을 받고 급소환된 남친을 두어서 그런지, 내가 과연 CC 이야기를 이렇게 해도 될까 싶다. 오히려 고무신-군화 이야기를 하면 했지‥ 어쨌건 우리가 CC라는 사실은 전역 후에도 변함 없으므로 부족한 솜씨지만 한 번 써 보겠다. 큰 기대는 하지 마시길^^.....



 

 CC를 하면 가장 좋은 점은 훨씬 더 자주 볼 수 있다는 거다. 어떤 사람들은 이걸 단점으로도 꼽는데, 둘이 좋아 죽을 지경이라면 서로의 목숨을 위해서라도 자주 보는 게 좋다. 시간표를 맞출 수도 있고, 같은 수업을 못 듣는다고 하더라도 점심시간이나 공강을 맞추면 그 짬짬이 볼 수 있다. 시험기간에 시험공부도 같이 할 수 있고 같이 등교는 못하더라도 하교는 할 수 있으며, 함께 동아리 생활도 할 수 있고 여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는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을 공유하는만큼 이야기 나눌 때에도 소재가 끊이지 않는다. 아니 소재보다는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좋다. 단순히 연인으로서가 아니라 각각의 학우이자 라이벌로서 발전적인 경쟁관계를 만들 수도 있다. 학교 안팎의 여러 장소들을 둘만의 데이트 코스로 만들 수도 있으며, 돈이 없거나 마땅히 갈 곳이 없을 땐 그냥 학교에서 머물러도 된다. 결국 CC의 좋은 점은 '공통의 장소', '공통의 환경'을 공유하면서 더욱 친밀한 사이가 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만나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단순한 조언자 이상의 끈끈한 관계가 되는 것은 덤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안 좋은 점을 이야기해 볼까. CC는 일단 보는 눈이 많다. 이게 가장 치명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사귈 땐 누구보다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지만, 헤어지고 나면 그만큼의 뒷소문을 덤으로 얻게 되는 것이다. 그게 설령 나쁜 말이 아닐지라도 필요 이상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연애는 결국 두 사람의 매우 사적인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공론화되어 이리저리 떠돌게 된다. 당사자 둘의 지인은 이별의 이유를 궁금해하고 확실치 않을 경우 자기들끼리 추측하기도 하며, 여차저차하다가 뜬소문이 돌기도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오지랖이 발휘된 또 하나의 사례라고 할까?

 사귈 땐 자랑처럼 드러내고 다녔던 CC라는 위치가 헤어짐 후에는 멍에가 되어 다가오기도 한다. 신입생부터 사귀었을 경우 혹은 오래 사귀었을 경우에는 내가 '나' 자체로 소개되지 않고 '누구의 여친', '누구의 애인이었던' 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그 사람도 늘 언급된다. 그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연인 사이를 포기하기로 한 둘에게는 같은 학교에서 '자꾸만 마주쳐야만 하는' 상황이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수많은 연애 선배들은 'CC는 피해라'라는 말을 전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난 현재 CC 진행형이고 지금의 남친과 헤어지고 싶은 생각이 단 한 톨도 없기 때문에 이렇다 할 결론을 내릴 위치는 못될 것 같다. 왠지 산전수전공중전까지 겪어본 연애 고수들이 썼어야 할 얘기를 덜컥 맡게 돼 어쭙잖은 글을 쓴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확실히 CC라는 특수한 위치 때문에 겪는 에피소드들이 있긴 할 것이다. 그러나  아직(?) 이별해 본 적이 없어서 그에 따르는 부작용이 얼마나 큰 지는 쉽게 가늠이 안 된다. CC가 남들에게 강력추천해도 좋을 만한 것인지에 대한 물음에도 당당하게 답할 자신이 없다. 다만 '이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사람과 아낌없이 사랑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것은 안다.

 CC라고 해서 특별히 크게 덕을 보거나 손해를 보는 게 있을까? 나는 없다고 본다. 둘이 같은 학교에 다니느냐 다니지 않느냐는 넘겨도 될 문제다. 얼마나 뜨겁게, 순수하게, 깊게, 열심히 사랑했는지 여부에 더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연인이 없으면 루저(Loser)인 양 장난 삼아 혹은 진담으로 솔로들을 슬프게 하는 사회 분위기를 썩 좋아하진 않지만, 사랑은 인생에서 빠져선 안 될 매우 필수적인 요소다. 마음껏 사랑하는 일도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나 또한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 배우게 된 점이 무척 많다. 연애를 흔히 인생공부라고들 하는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남들보다 마음앓이를 오래 했다는 것 빼고는 나는 꽤 평탄한 연애를 한 것 같다. 크게 다툰 적도 없고, 이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접근해 온 적도 없고(이.. 이거슨 나의 매력 문제인 것인가.............), 동시에 다른 이가 눈에 들어온 적도 없고, 행복의 순간이 거짓말 같아서 믿기지 않았던 적은 있지만 사랑을 의심해 본 적도 없으니까. '그래 좋을 때 많이 즐겨둬'라며 거침없는 독설을 (속으로) 내뱉고 있을 사람들이 즐비할지라도 나는 사랑하기를 쉬지 않겠다. 물질적 행복만큼이나 정서적 행복이 주는 효용이 너무 커서 절대 스스로 끝내버릴 마음이 없다. 비록 지금 적는 이 글이, 스물하고 두 해를 넘긴 어린 자의 치기어린 과거의 기록이 될 지라도 별로 후회되지는 않을 것 같다. 적어도 나는 확신을 갖고 사랑에 뛰어들었고 매우 행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내 인생 가장 잘한 선택이 되길 바라며 염장 가득한 글을 마무리한다.




+덧) 돌은 다 읽고 던지셔도 늦지 않습니다. 겸허한 자세로 달게 받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