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진당 사태가 대단하긴 대단한가 보다. 크고 작은 이슈들이 통진당 건으로 뒤로 밀렸다. 그만큼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은 안다. 더구나 진보를 자칭하는 곳에서 민주주의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 진보 쪽을 자처했던 나 같은 사람이 받게 될 멘탈 붕괴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았다. 노동자를 위한 정당과 종북 성향으로 각각 대표되는 두 가지 대외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민주노동당을 볼 때 늘 석연치 않았다. 전자만 보면 참 좋은 정당인데, 후자가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사건은 터졌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보다는 자신들을 정치적 모략에 휘말린 희생자로 이미지 메이킹하는 듯한 당권파의 모습은 국민들을 화나게 했다. 비례대표로 얻은 의석을 자진해서 포기하면 그나마 말이 덜 나왔을 텐데, 질질 끌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 지점에서 진보 대표주자로 지목되었던 통진당에 실망한 사람들이 더 늘었으리라 본다. 국민의 뜻이 일부 반영되긴 했으나 소위 ‘얻어 걸린’ 부분이 컸던 비례대표 당선자 둘이 냉큼 의원 명부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그네들에게 ‘국회의원’ 자리가 주는 매력이 치명적인 모양이다. 

이렇다 보니 국회의원 제명이 언급되는 게 하나도 이상해 보이지 않는다. 국회의원 제명은 어떤 절차를 거쳐 이루어질까. 제명이 가능한 경우는 국회의원이 내부의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국회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경우 등이다.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제명이 이루어지는데, 국회의원 신분일 때 의원활동과 관련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여야 제명을 적용할 수 있다. 

‘국회의원 신분일 때 의원활동과 관련해 헌법이나 법률을 위반하는 경우에 제명을 적용할 수 있다’는 이 부분이 중요하다. 5월 30일에 새로운 국회가 열린다. 문제가 되는 두 의원은 아직 그들은 의원 활동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 법률에 따르면 제명 사유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할 수는 있으나, 국회법을 적용받지는 못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새로운' 국회의원 제명 이야기가 불거지고 있다. '종북성(?)이 분명한 이들이 밝혀졌으니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선거 과정에서 '색출된' 이들을 제명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정도로 정리하면 될까.




사진 출처 : News 1





‘제명’이라는 가장 수위 높은 처벌 이야기가 나올 만큼, 국민의 일꾼을 뽑는 데에 깊이 신경쓰고 있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나라의 일꾼 한 자리라도 허투루 뽑아선 안 된다는 생각에서 제명이 언급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국회의원 제명 건은 진흙탕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여당 측이 사상과 이념의 불온함을 이유로 통진당의 두 의원을 제명을 요구하자, 야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을 ‘구국의 혁명’으로 찬양한 박근혜 의원도 제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받아쳤다. 이렇다 보니 제명 건은 국민 앞에 부끄러운 이들을 국회의원으로 두기 어렵다는 ‘올바른 비판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듯하다. 단지 상대를 제압시킬 만한 ‘거리’가 필요했을 따름이다.

 무언가 문제가 발생하면 바로 처방을 내 놓는 사회가 과연 좋은 사회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하나의 제도는 자리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그 세월을 버텨온 대가로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 따라서 새로운 법과 제도를 만들 때에는 훨씬 더 신중해야 한다. 왜 국민 정서뿐 아니라 국가 정체성과도 맞지 않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더 주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비례대표제의 한계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건 아닐까. 상한 줄기를 제거하는 것은 간단하지만 뿌리를 손보는 것은 귀찮고 품이 많이 든다. 그러나 잘못이 일어난 당시의 해결에만 급급하다면 이러한 문제는 되풀이될 것이다. 

 지켜야 할 모든 사항을 법으로 만들어 구속력을 부여한 사회는 후진적이다. 만약 사람들이 모두 ‘길에 침을 뱉는 행위는 공공의 이익과 평화를 해치니까 하면 안 돼’라고 각성하고 있다면, 굳이 처벌 조항을 만들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게 잘 지켜지지 않으니 강제성을 가진 법으로 만드는 것일 뿐. 야심차게 거론된 ‘제명’이 결국 정치판 싸움의 좋은 먹잇감이 되거나, 이 사회의 후진성을 강화하는 데 일조하게 된다면 분명 재고해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