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는 현실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라 객관적 수치가 필요하다. 그리고 효율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효율적이어야 성장한다. 그럼에도 작금의 논의에는 한 단어가 추가됐다. 바로 ‘민주화’. 재벌개혁론과 재벌활용론, 모두 ‘경제민주주의’를 위해 나왔다. 두 주장의 궁극적인 목표가 경제민주화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민주주의는 복잡한 문제다. 가치의 문제기도 하다. 효율과 객관적 수치와는 다른 논의가 필요하다. 재벌개혁론과 재벌활용론의 논쟁이 경제적인 객관적 수치와 효율만으로 얘기될 수 없는 이유다. 두 주장 모두에서 민주주의와 민주주의의 가치에 관련된 심층적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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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개발독재의 역사적 의미와 한국 사회에서 재벌이 갖는 사회적 의미 그리고 회사 내 경제 권력의 민주화, 모두에 집중한 재벌개혁론과 달리 재벌활용론은 안타깝게도 민주주의에 대한 통찰이 부족해 보인다. 개발독재를 옹호하는 듯한 뉘앙스를 눈감고 넘어가더라도 경제학적인 측면에 모든 논의가 집중된 모양새다. 재벌활용을 하는 이유부터가 근본적으로 신자유주의 투기 세력을 막기 위해서다. 이유는 간단하다.신자유주의는 국가 경제를 해치고 성장을 저해하기 때문이다.
물론, 재벌활용론은 신자유주의 투기 세력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며 경제 민주화를 위해 신자유주의 투기 세력은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이 말은 그 자체로서 옳다. 그러나 이 말이 ‘경제민주화`를 위한 `재벌활용’을 주장하는 진짜 이유인지는 의심이 간다. 오히려‘재벌활용’을 위한 ‘재벌활용’으로 보일 소지가 다분하다. 재벌활용론 입장에서 줄기차게 제기되는 재벌 중심의 제조업 경제 중시 때문이다. 아마 재벌활용론 입장에서는 재벌을 해체하고 신자유주의 투기 세력의 위험을 차단하는 방법이 있다고 해도 재벌개혁을 옹호하지 않을 것이다. 재벌이 해체된다면 경제 성장은 요원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재벌활용론의 대표주자, 장하준 교수는 이미 그의 저작 ‘나쁜 사마리아인들’, ‘사다리 걷어차기’, 그리고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까지 국가 주도형 제조업을 중심에 두고 복지와 성장만 지속적으로 이야기 해왔다. 경제민주화는 요즘에 와서야 언급됐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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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활용론이 복지와 성장 그리고 민주주의까지, 3가지 모두를 의도했다고 인정해도 문제는 남는다. 워낙 경제민주화에 대한 언급 자체가 없기도 하지만 짤막한 경제민주화 해법이 경제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지배받는 자가 지배한다.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일치다. 권력의 분배와 견제 그리고 균형이다. 재벌활용론은 재벌과 타협해서 노동, 복지, 세제 등에서 양보를 얻어내고 경제민주화를 이룩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재벌이 양보하면 회사원과 사장이 동등해지고 힘의 분배와 균형이 이루어지는가? 오히려 재벌을 비롯한 경제 권력이 일종의 시혜를 베푸는 것은 아닌가? 노동자의 형편이 조금 좋아진다고, 또 재분배가 조금 더 잘 이뤄진다고 경제민주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독점적 경제 권력이 분산되고 경제 권력끼리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경제민주화가 되는 것이다.
결국엔, 다시 돌아 민주주의다.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자면서 왜 경제만 얘기하는가. 독점적인 경제 권력을 분산하자고 하는 데 왜 독점적인 경제 권력을 순화하는 데서 끝나는가. 아쉽고 안타까울 뿐이다. 성장과 민주주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보니 버거워졌을 수 있다. 그래도 민주주의가 이번엔 더 중요했다. 성장하려면 효율성만 따지면 된다. 미국이 경제민주주의해서 자본주의 최강대국이 된 게 아니다. 작금의 경제민주주의 논의는 새로운 국가, 조금 성장하지 못해도 모두가 잘 사는 국가를 위해 나왔다. 그리고 기형적인 경제구조와 경제권력을 변화시키기 위해 나왔다. 논점을 흐리지 말자.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경제 민주주의’가 나온 이유, ‘경제민주주의’에서 ‘민주주의’를 빼먹지 말자는 이야기다.
* 이 글은 tvN <백지연의 끝장토론>의 청춘칼럼 '토닥토닥'(토론해!닥치지마!)에 기고한 고함20의 글입니다. 매주 화요일 오후에 '끝장토론' 홈페이지를 통해서 만나볼 수 있으며, 고함20에는 매주 수요일 게재될 예정입니다. 끝장토론 홈페이지의 '토닥토닥' 게시판에서는 고함20 기자의 글뿐만 아니라 단편선, 한윤형, 송준모, 황윤지 씨 등 좋은 시각을 보여주시는 20대 논객 분들의 글들을 함께 볼 수 있습니다.(http://tvn.lifestyler.co.kr/DOCU/bbs/bbs_3003.asp?bbsID=87132473&cur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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