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의 주인은 국가인가? 아니 국민이다. 그렇기에 국가권력이 방송을 통제할 권리가 없으며, 오로지 일반 국민만이 공영방송에 대한 감시가 가능하다. 그러나 이렇듯 상식적이고 자명해 보이는 명제는 현 정권에서는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되어버린다. MBC, KBS 두 개의 공영방송과 더불어 공기업들이 대주주인 YTN이 사실상 국가권력에 의해 장악 당하고, 권력이 방송을 주무르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기자들이 파업에 나선 상황, 이것이 2012년 한국의 현실이다.

사적 자본이 만든 미디어 매체들은 기본적으로 모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기사를 쓰기 힘들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공영방송은 다르다. 기본적으로 ‘독립’되어있는 방송매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국민의 세금을 방송국의 재원으로 쓰는 만큼, 특정 자본이나 권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공정한’ 보도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 맥락에서 공기업들을 대주주로 두고 있는 YTN 역시 공영방송과 비슷한 층위에서 생각할 수 있다.

종편채널까지 탄생하면서 대형자본이 미디어 시장을 잠식해가는 가운데, 공영방송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공영방송이 아니면 공정하게 사실을 보도하는, 공익에 부합하는 미디어 매체가 사실상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정하게’라는 것은 기계적 중립을 지킨다는 것이나, 정치적인 색깔을 아예 배제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독립된 언론 매체로서, 외부에서의 압박을 받지 않고 보도국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는 체제에서 보도해야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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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MBC, KBS는 공공재인 지상파를 점유하고 있으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때문에 더욱 공적인 책임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분히 보장해주는 보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지상파 3사가 방송과 여론을 주도하는 구조를 국민들이 용인하는 이유는, 적어도 그들이 지상파의 ‘책임’을 방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다. 대형자본 이 수익을 내거나 또는 그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만든 방송사보다는 ‘공정성’을 중시하는 공영방송이 지상파 뉴스보도를 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공영방송이 정부 권력과, 그와 엮인 자본 권력에 의해 지배당한다면 더 이상 지상파 뉴스보도를 할 자격이 없어진다. 언론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공영방송은 더 이상 공익을 위한,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공정성과는 거리가 멀어진 지상파 공영방송의 뉴스보도는 사실을 왜곡하거나 숨기면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막아버리게 한다. 방송사를 잡고 있는 세력의 의도대로 여론이 흘러갈 가능성도 그만큼 높아지게 된다.

이번 파업은 절대로 내부의 노사갈등으로 일어난 파업이 아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정치파업은 더더욱 아니다. ‘진실 추구’라는 가장 기본적인 저널리즘의 원칙과, 공영방송으로서의 ‘공정성’을 지키지 못하는 구조에 대해서 저항하는 것이다. 나아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한 투쟁이다. 숨기거나, 가리는 것 없이 철저하게 권력과 자본의 감시자가 되어야 할 언론이 제 기능을 못한다면 그 피해는 전부 국민들이 받게 된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고 압박하면서, 여론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이끌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니만큼, 국민의 ‘알 권리’가 극심하게 침해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KBS, MBC, YTN등 정부가 인사에 관여할 수 있는 방송사에는 낙하산으로 친 정부 인사를 사장에 앉혔고, 현 정부 입맛에 맞는 보수적인 미디어 자본에게 ‘종편’을 허락하면서, 방송 출범 당시에 상당한 특혜를 주기도 했다. 심지어 민간인 사찰에서도 언론사는 감시의 대상이었다. 3개 방송사 동시 파업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상황이다.

방송사 파업은 언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국민의 문제다. 언론 자유를 보장하자는 외침은 언론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국민들을 위한 것이다. 왜곡되거나 조작된 정보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대로 된, 진실한 정보를 원하는 국민이라면 방송사 파업을 지지해야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파업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지금보다 더 커질 경우, 정부 입장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권 역시 방송사 파업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정부 권력이 언론 장악을 한 상황에서는 야당은 물론이거니와, 여당 내 소수파의 목소리는 묻힐 수밖에 없다. 새 국회가 열리면 여·야를 막론하고 방송사 파업 사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온 힘을 쏟아야 한다. 물론 미봉책으로 방송사 파업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것은 곤란하다. 방송의 공정성을 보장하고,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보도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파업 노조원들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