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접했던 몇 차례의 선거에서 빠지지 않고 듣게 되는 말이 몇 가지 있다. ‘뽑을 사람이 없다’, ‘후보가 다 이 모양이니 최악보단 차악을 택하는 게 낫겠다’,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똑같이 도둑놈들이다’ 등등.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말은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뽑는다’는 것이었다. 고개가 끄덕여지면서도 한편으로 기분이 나빴다. 지금의 대통령이 나오기까지 결국 나도 어느 정도는 기여했다는 걸로 들렸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짐작케 해 준다면, 좋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는 것밖엔 방도가 없다.

그렇다면 그 ‘좋은’ 대통령이란 어떤 것일까. 처음으로 대통령 선거에 한 표를 던졌던 5년 전을 되돌아보았다. 그때 가장 중시했던 건 후보자의 비전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 후보가 얼마나 새로운 세상을 선물해 줄 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독재자를 혐오하면서도 결국 ‘훌륭한 지도자’가 이끄는 유토피아를 상상했던 것이다. 그만큼 유권자이면서 국민인 나의 역할은 작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한 사람 몫의 표를 행사하는 것뿐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도 내가 가장 첫 손에 꼽는 것은 대통령 후보의 비전이다. ‘아직 세상이 살 만하구나’ 하는 희망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에게 아마 한 표를 줄 것 같다. 단, 새 세상을 만들자고 팔을 걷어붙인 만큼, 더불어 살아갈 국민들과 함께 그림을 그려야 한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이상향에 국민들을 편입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람들이 원하는 바가 어떤 것인지를 알고 그것을 어떻게 이루어 나갈지 같이 고민하는 후보여야 한다는 의미다.

또 한 가지, 사람이 보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지향하는 후보였으면 좋겠다. 지난 대선의 주인공은 국민이 아니라 경제였다. 죽지도 않았던 경제를 살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후보에 표가 몰렸다. 좋아진 경제상황을 누릴 국민의 삶은 뒷전이었다. 그래서인지 최근 5년 동안 용산참사, 쌍용차 해고 등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일들이 숱하게 벌어졌고 더 확연히 눈에 띄었다. 가장 우선시되는 가치를 사람에 둘 줄 아는 대통령은 꿈일 뿐일까. 이번 대선에선 꼭 실현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