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함20의 새로운 연재, 동상이몽!
다양한 전공을 가진 20대들이 모인 고함20. 같은 주제를 보고도 전공에 따라 다른 생각을 가집니다. 하나의 키워드를 각기 다른 전공을 가진 두명의 필진이 풀어내는, '동상이몽'입니다.



심훈의 <상록수>를 통해 본 농활의 어제와 오늘.-국어국문학


농활의 의미

심훈의 <상록수>에서 주인공인 박동혁과 채영신은 농활을 한다. 농촌계몽활동을 하는 것이다. 이들은 소설 속에서 지식인층으로 등장하여 농민의 의식, 기술 등을 계몽하고 개발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단체를 형성하여 사회교육적 활동을 한다.

최근의 농활은 <상록수>에서의 그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농활’이 ‘농촌계몽활동’의 의미가 아닌 ‘농민학생연대활동’의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다. 여럿이 함께 무슨 일을 하거나 책임을 지는 ‘연대’를 바탕으로 농민과 학생은 서로의 공동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각계각층의 사람들로 구성된 우리사회엔 수 많은 문제가 있다. 그런 것들 중에는 개인이나 몇몇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집단과 집단이 연대를 통해 함께 극복하고 해결해나가야 하는 문제도 있다. 학생들은 농활을 통해 노동의 소중함과 농민들의 노고를 깨닫고, 농민들은 학생들에게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삶의 경험과 지혜를 알려주고 더 큰 시야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서로의 처지와 상황은 다르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 속에서 더욱 깊은 연대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혹자는 농활을 ‘농촌봉사활동’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이를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농활을 봉사활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봉사’란 어느 한 사람이 상대방을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동의 문제 앞에 농민들은 학생들에게 농사일 등의 도움을 받고, 학생들은 그 속에서 농민의 삶과 우리 사회의 현실을 몸소 배우게 되는 등 농활을 통해 농민과 학생은 ‘서로서로’ 도움을 주고받게 된다. 따라서 농활은 누구 하나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주는 ‘봉사’의 의미보다는 ‘연대’의 의미가 더 강하다.

농활의 목적

채영신은 창문을 말끔히 열어젖혔다. 그리고 청년들과 함께 칠판을 떼어 담 밖에서도 볼 수 있는 창 앞 턱에다가 버티어 놓고 아래와 같이 커다랗게 썼다.

“누구든지 학교로 오너라.”
“배우고야 무슨 일이든지 한다.”

나무에 오르고 담장에 매어달린 아이들은 일제히 입을 열어 목구멍이 찢어져라고 <농민득본>의 구절을 바라다보고 읽는다. 바락바락 지르는 그 소리는 글을 외는 것이 아니라 어찌 들으면 누구에게 발악을 하는 것 같다.      - 심훈 <상록수> 중에서 -

이렇듯 심훈의 <상록수>는 민족주의적인 바탕 위에서 농촌계몽운동의 전형을 그린다. 농촌계몽대의 귀환 보고 회의에서 만난 청석골의 채영신과 한곡리의 박동혁은 농촌계몽운동의 중심이 되고, 이를 통해 작가는 당대에 유행하던 브나로드운동을 부각시키고 농촌의 부흥을 꾀한다.

결국, <상록수>를 통해 작가가 지키려 한 것은 농촌의 자주성과 주체성이라고 볼 수 있다. 일제의 문명정책 또는 우민정책에 의한 교육의 기회통제에 대항하여 농촌의 교육적 환경을 확산시켜나간 것이다. 당시 지식인층이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는 구호 아래 적령 아동을 모아 학교교육을 대신하는 야학 등을 실시하고, 문맹자를 위한 성인교육을 한 것도 모두 농촌의 주체성을 지키려는 목적 아래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농활도 그 목적에 있어서는 <상록수>에 나타난 농활과 그리 다르지 않다. 농활을 통해 농민들은 가라앉고 있는 1차 산업의 현실을 학생들에게 알리고 농촌을 지키려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학생이나 지식인층이 중심이 됐던 예전의 농활과 달리 현재의 농활은 농민과 학생 모두가 주축이라는 점이다. 최근 농민들은 한미 FTA, 한중 FTA와 같은 농업시장 개방을 개인의 경제적인 문제를 넘어 25%에 불과한 국가의 식량 자급률, 식량주권(안보)과 연결지어 전 사회에 대한 걱정을 하고 있다. 또한, 학생들은 학교 등록금 인상의 문제에 대해 큰 고민에 빠져있다. 이런 상황에서 농민과 학생이 서로를 이해하고 의견을 공유하는 과정에서 농활은 FTA, 등록금 문제 등과 같은 사회 전체의 공동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준다.



농활의 변화

<상록수>에 나타난 농촌계몽운동에서 농촌봉사활동, 농민학생연대활동에 이르기까지 농활은 다양한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재능기부라는 이름으로 많은 대학생들이 자신의 전공적 지식이나 능력을 이용해 농촌에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 제주대 미술학부 학생들은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1리사무소 건물 외벽에 산과 나무, 해와 구름 등의 그림을 그려 넣어 무미건조했던 건물 외벽을 화사한 예술작품으로 만들고, 동의대 한의학과 학생들은 경남 고성군과 하동군 등을 찾아 상대적으로 의료 혜택에서 소외 받고 있는 촌 어르신들에게 침, 뜸, 생약 처방 등을 해주는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물론, 일손이 부족한 농촌에 가서 농사일을 돕는 것이 보통이지만 재능기부는 농활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준다.

최근 대학단위의 농활이 정치색을 띤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 농활에 가면 교양시간 때 정치적인 얘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정치성향이 맞지 않다면 거부감을 느낄수도 있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강압적인 경우는 극히 드물고 나누는 사안들 자체도 농활하면서 몸소 겪을 수 있는, 학생들이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심훈의 <상록수>에서도 드러나듯 농활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농촌의 부흥에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부분에 대해 정치적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농활을 다양한 의견 공유와 고민의 장으로 생각한다면 학생 스스로에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농활, 비정규직과 아웃소싱, 그리고 노동유연성.-경제학


'농촌을 계몽시키자' 따위의 비장한 슬로건은 농활에서 멀어진 지 오래다. 현재의 농활은 계몽이 아닌 봉사다. 자식들을 도시에 빼앗긴 어르신들에게 대학생들의 팔팔한 노동력을 잠시나마 전하는 농촌봉사활동이다. 낫이라고는 잡아본 적 없는 고운 손들이 무슨 도움이 되겠냐는, 괜히 우르르 몰려와 막걸리나 축내지 않겠냐는 조소들도 있으나 다행히도 대학생들은 막걸리 값을 한다. 사람 한명이 아쉬운 6~7월의 모내기 철. 때 마침 1학기를 끝낸 대학생들은 밥과 막걸리를 연료 삼아 기계처럼 움직여주고 재회를 예고하며 떠난다. 그 때 심은 벼가 익어 추수할 때 쯤 2학기 중간고사를 마치고 돌아와 주니, 어르신들은 존 코너에게 돌아온 T-800(영화 터미네이터에서 나오는)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한 해에 딱 두 번 있는 농번기를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맞추는 대학생 농활. 좀 딱딱하게 말하자면, 노동유연성이 효율적으로 발휘된 아웃소싱이다.

‘노동유연성’ 조금 어렵게 들린다. ‘아웃소싱’ 덜 어렵다. ‘분업’ 초등학생도 안다. 세 단어 모두 같은 색깔의 단어들이다. 교과서 속 분업의 예를 떠올려보자. ‘1명의 노동자는 하루 한 개의 바늘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생산 공정을 18가지로 나누고 노동자들의 직무를 나누자 10명의 노동자가 하루 4800개의 바늘을 생산할 수 있었다.(애덤 스미스-<국부론> 中)’ 분업에서 더 나아가면 아웃소싱이다. 위의 예에서 각 공정을 별개의 회사가 맡는다면, 그러니까 바늘을 만들어 포장해 팔던 A회사가 B회사에 바늘 만드는 하청을 주고, 만들어진 바늘을 포장해 팔기만 한다면, A회사가 B회사에 바늘 생산을 아웃소싱한 것이다. 노동유연성은 아웃소싱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인적자원이 얼마나 신속하게 재 배분 될 수 있는 지, 즉 얼마나 고용이 유연한지를 뜻한다.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비정규직, 생산설비에 투자할 필요 없이 필요할 때 계약할 수 있는 아웃소싱 등은 노동유연성을 높여주는 요소들이다.



농번기 마다 찾아주는 대학생들을 맞는 농촌 어르신들 마음처럼, 기업은 비정규직이 참 고맙다. 한번 고용하면 몇 십 년을 책임져야 하는 정규직과는 달리, 일손이 필요할 때만 고용해 몇 년 쓰고 계약해지하면 되기 때문이다. 아웃소싱도 마찬가지다. 요즘처럼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때에 섣불리 생산설비를 마련하기란 쉽지 않다. 몇 년 못썼는데 트렌드가 바뀌어 상품생산이 필요 없어지면 설비마련에 들어간 큰돈에 배 아프지 않겠는가. 필요한 물품을 아웃소싱하면 이러한 리스크를 예방할 수 있다.

위에서 당신이 느꼈듯, 노동유연성은 기업에게만 살갑고 노동자들에게는 얄밉게 다가오기도 한다. 일례로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들이 있다. 몇 십 년의 근무가 하룻밤에 끝나버린 이유는 그들의 비정규직 신분 때문이었다. 학생들의 항의에 학교가 내민 카드는 아웃소싱. 학교는 청소노동자들이 소속된 하청업체와 계약했을 뿐이라는, 그래서 그들의 복직은 학교의 권한 밖이라는 대답이었다. 이처럼 노동유연성은 노동자를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으로 전락시키기도 한다. 이에 대한 경고는 100년 전에도 있었다. ‘분업은 노동의 생산력 및 사회의 부와 세련도를 높여 주지만, 그것은 노동자를 기계로 영락시킨다.(칼 마르크스-<경제학철학 수고> 中)’

농활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마르크스까지 가버렸다. 다시 농촌으로 돌아가며 정리하려 한다. 미리 결론을 말하자면 노동유연성은 절대악이 아니다. 오히려 기특한 녀석이다. 모내기철의 품앗이를 생각해보자. 대학생도 농활도 없던 시절에도 많은 일손이 필요한 모내기를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농촌의 미덕 품앗이에 있었다. 그런데 이 품앗이도 아웃소싱이고 노동유연성이다. 필요할 때 우르르 몰려와 새참 먹고 일했다가 우르르 빠져주지 않는가. 참 효율적이다. 다만 비정규직 노동자들과는 달리, 그들에게는 돌아갈 곳이 있었다. 모내기철이 끝나면 그 때부턴 자기 집 새참 먹으면 되는 것이다. 현대경제에서도 노동유연성의 효율성을 취하면서도 인간성을 버리지 않을 수 있다. 스웨덴이 그렇게 하고 있다. 높은 노동유연성을 통해 기업의 부담을 줄여주면서도 탄탄한 사회보장제도를 이용해 노동자들의 권리도 보장하고 있다. 기업은 인력이 필요할 때 마다 망설임 없이 고용할 수 있고, 노동자들은 계약이 끝나도 재취업의 기회가 보장되어있으니 안심한다. 기업의 활발한 채용은 고용을 해결하고, 낮아진 생산비는 낮은 가격으로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사람이 만든 제도 대부분이 그렇듯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그 쓰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