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저히 라별 위주의 후기입니다. 읽는 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3월 13일 토요일. 봄답지 않은 쌀쌀한 날씨를 뚫고 마포 FM 사무실에 찾아갔다. 매주 토요일, 일요일 6시부터 8시까지 전파를 타는 ‘이빨을 드러낸 이십대(앞으로 편의상 이드이로 부르겠다)’에서 우리를 초대했기 때문이다. 이미 다른 프로그램에서 릴레이 인터뷰에 출연한경험이 있었던 페르마타는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많은 이들의 환영을 받았는데, 정말이지 ‘우정과 환대의 공간’에 들어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라디오 스튜디오라고는 머리털 나고 처음 오는 거였기 때문에 난 잔뜩 긴장해 있었다. 그렇게 긴장되어 있는 모습이 눈으로도 확인될 만큼 잘 보였는지, DJ분들이 편하게 방송하면 된다고 토닥여 주었다.


* ‘이빨을 드러낸 이십대’ 간단한 소개

이빨을 드러낸 20대 _ 2드2
솔직담백한 20대들이 만드는 유쾌하지만 날카로운 방송!
88만원세대들의 당당한 자기고백, 저녁 6시부터 8시까지 당신을 우정과 환대의 공간으로 초대합니다.


 7시 조금 넘어서 시작하는 2부 게스트로 초대된 우리는, 운 좋게 그 전 방송도 스튜디오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아주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평소엔 시계 이상 이하도 아니어서 잘 울리지도 않던 전화가 갑자기 쩌렁쩌렁 울려버린 것. 물론 스튜디오에 들어갈 때 폰을 꺼 두거나 가지고 가지 말아야 한다는 건 상식으로 알고 있었다. 왜 그때 핸드폰을 갖고 들어갔는지 아직도 의문이다. 너무 놀랐고 당황하고 있는데 벌써 백 회 이상 방송을 한 프로답게 DJ분들이 기지를 발휘해 매끄럽게 넘어갔다. 안도의 한숨을 쉬기도 잠시, 걷잡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아, 이래서 방송을 제대로 할 수나 있을까?



 

 우리가 출연하기 전에 한 1부의 주제는 온, 오프라인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던 고대 자퇴생 김예슬씨에 대한 이야기였다. 학교 게시판의 댓글을 읽어 주기도 하고 본인의 의견을 내 놓기도 하면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했다(인터넷 언론은 물론 경향신문 등 주요 매체에도 기재될 만큼 화제가 됐던 이 주제는 다음 주 고함20에서도 다룰 예정이다).


 본격 20대 선전 웹진이라고 소개된 고함20은 그렇게 첫 방송을 탔다. 고함20이라는 단체 이름을 걸고 나온 역사적인 방송이 시작된 것이다. 이미 한 번 방송 데뷔를 마친데다가, 음악방송을 꽤 오랫동안 해 온 재주꾼 페르마타는 전혀 떨지 않는 듯 보였다. 또 사전 준비를 별로 못해왔다며 조용히 있어야겠다고 한 전 편집장 테싸마저 어느 때 멘트를 쳐야 하는지 조심스레 코치도 했고 어떤 질문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강력한 내공을 보여주었다. 결국 짜게 식은 건 라별 나 혼자뿐‥ 방송 다시듣기로 그 날의 기억을 더듬으며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속도 조절이 잘 되지 않아 빨리, 그것도 얼어 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하는 내 멘트에 손발이 오그라들 지경이다.



 개인적인 이야기 몇 가지를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고함20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처음에는 그냥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고함20에 대한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니 감회가 남달랐다. 1년간의 휴학을 하면서 많은 시간을 들이고, 온몸을 내던졌다고 할 순 없지만 반쯤은 뛰어든 고함20활동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 그동안 암묵적인 합의만 거쳤던 고함20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가감 없이 털어 놓았기에, 우리 셋의 속내를 들을 수 있어 뜻 깊었다. 특히 이번 주 월요일부터 편집장이라는 어깨가 무거운 자리에 오르게 될(방송은 편집장 임기 시작 전이었다) 나에게는 더욱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고함20에 약 6~7개월 간 몸담고 열심히 달려왔는데도 정작 20대에 대한 명료한 가치관을 잘 세우지 못했다는 뼈아픈 반성을 했고, 설 자리가 없다고만 생각해 왔던 20대 언론을 이끌어 가는 한 사람으로서 충분한 책임감을 지녀야겠다는 다짐도 새로이 했다.


 벌써 200여 건이 넘는 기사를 발행한 고함20. 각자 제일 인상적이었던 취재원이나 기억에 남는 기사를 꼽는 것도 흥미로웠다. 20대는 그릇을 키우는 시기라는 잊지 못할 말을 남겨 준 취재원, 명품과 20대를 연결 짓기만 하면 활활 타오르는 반응을 보여주는 몇몇 악플러들, 성추행 기획 기사를 쓰면서 만난 친구들의 내밀한 이야기 등등. 늘 ‘기사’라는 새로운 생산물을 만들어 내야 하는 기자들의 솔직한 고민을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있어 후련했다.
 


 게스트가 셋이나 되다 보니 마이크를 한 번씩만 돌려도 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 덕에 치밀하게 파고드는 이드이의 질문에 채 답하지도 못하고 방송은 끝이 나고 말았다. 하지만 당장 발등의 불이 꺼졌다고 해서 마음이 놓이지는 않는다. 이미 방송까지 탄 고함20의 행보에 주목하는 이들이 얼마든지 있으리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이름도 짓지 않고 그저 ‘20대 저널리스트의 모임’으로 조그맣게 첫 걸음을 뗐던 고함20의 초심을 되새겨, 원하던 방향으로 흔들림 없이 나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이도 비슷하고 생각하는 것도 비슷하고, 표현하는 방식은 조금 다르지만 이야기하고자 하는 내용은 동일선상에 서 있는 이드이와 고함20의 무척 특별한 만남은 아쉽게 끝났다. 그렇지만 어떤 계기로든 자주 마주칠 수 있겠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드는 건 왜일까? 20대도 살맛나는 세상을 꿈꾸는 젊은이들 모두에게 행운이 깃들길 바라며 부족한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