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바탕에 “WE the PEOPLE- your voice in our government" 문구. 백악관 로고가 중앙에 달려 있는 이 사이트(http://petitions.whitehouse.gov)에는 미국 정부에 제출하는 탄원서가 업로드된다. 미국 시민들이 미국 정부가 해줄 수 있는 일을 정부에게 요구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 사이트에 S. KOREA라는 글자가 보인다. 청원 내용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지난 12월 19일 한국의 18대 대선 과정에서 부정선거(election rigging)이 있었으니, 이러한 비합법적 개입에 대해 수개표(manual counting)나 재개표(re-counting)를 요구한다.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위해 민주당을 지지(support)해 달라.

2012년 12월 29일 작성된 이 청원서는 이번 달 28일까지 25000명의 서명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1월 2일까지 6447명이 서명하였다. 목표 인원을 넘길 경우 백악관은 공식 논평을 내야 한다. 청원자 명단은 익명이나 Kim J, 현신 박 등의 이름으로 보아 재미 동포들이 대부분임을 알 수 있다. 청원서는 ‘시민권과 자유’, ‘외교’, ‘인권’ 이슈로 분류되어 있다.



"Recount NOW!"로 강력하게 끝맺는 청원서는 허망하다. 일부 네티즌들이 ‘제 18대 대통령 선거 무효소송인단’을 모집하고 있고, 헌법재판소 홈페이지 게시판에 수개표 청원 요청이 2000여 건 게시되었다고는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들이다. 한국 내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왜 미국에 알리고 해결해달라고 하는지 알 수 없다. 마치 누구 옷깃인지도 모르고 아무나 붙들고 떼쓰는 아이 같다.

그렇다면 과연 떼쓰는 아이는 정당한 이유로 울고 있는가. 부정선거 의혹에 대해 제시된 증거들 중에는 “방송 3사를 제외한 출구조사는 대부분 문재인이 앞섰음”, “재외국민 투표와 부재자 투표에서는 모두 문재인이 앞섰음”  '투표 도장이 박근혜-문재인 칸에 반반씩 찍힌 걸 박근혜 표로 인정함" 등이 있다. 과연 수긍할 만한 의심일까. 출구조사는 실제 개표 결과와 다를 수 있고, 재외국민 투표는 유효 표의 작은 일부일 뿐이다. 무효표 처리 규정에는 '완전히 누굴 찍었는지 식별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유효표로 인정한다.'는 내용이 있다. “우연 치고는 너무 이상한 51.6%”까지 나오다니, 눈살이 찌푸려진다.

실제로 선거를 끝까지 치르고 표를 합산하였을 때 박근혜 후보의 지지율은 출구조사 결과를 무마할 정도로 높았다. 부정 선거가 의심되기에는 상당히 큰 격차로, 이례적인 75.8% 투표율로 당선된 것이다. 오후 3시까지 출구조사에서 문재인이 2% 앞서고 있었는데 1시간 반만에 역전당했다며, 그 시간에 50대가 투표장에 모두 몰려가 만장일치로 박근혜를 찍어야만 역전시킬 수 있는 수치다, 대체로 오후에는 젊은 층의 투표율이 높은데 이것도 의심스러운 정황이다, 이들의 의심의 눈초리가 어설프다.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되기에는 세상이 너무 투명해졌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선관위에서도 재검표를 피할 생각이 없다고 했으니 의혹이 있더라도 무조건 덮자고 주장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러한 사건이 과연 어떤 의미를 나타내느냐가 중요하다. 백악관 문까지 두드리며 청원을 요구하는 태도에서 주체적인 시민의식은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도에 따가운 시선이 쏟아질 우려가 크다. 정당한 이유와 결과를 기대할 만한 목적이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미국 시민사회의 일이 아닌데 미 정부에게서 무엇을 기대한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깨어있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발을 동동 구르며 과거에 매달리는 태도가 아니다.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 다음, 격앙되지 않고 차분하게 계획을 세워야 한다. 새해 첫날부터 백악관이라니, 너무 멀리 가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