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과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노동자 역시 노동조합을 조직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개 노동조합에 가입하지 않는다. 기간제 계약에 묶여있는 비정규직으로서는 기업에게 밉보여 재계약을 하지 못할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열악한 노동환경과 노동조건을 참고 견딘다. 수십년을 그래왔다. 그러나 그랬던 그들도 이제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다.

태광그룹의 티브로드 케이블방송은 1480만 가구의 가입자를 가진 업계 1위 업체다. 티브로드가 고용한 215명의 직원 중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율은 52.7%에 이른다.

"이제 그만 인간답게 살고 싶다!"

4월 18일, 티브로드 기술센터의 10년차 tsc 기사 양재용씨는 아직 싸늘한 광화문 길바닥에 앉아 촛불을 들었다.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동조합 창시에 기여한 5명의 '독수리 5형제' 중 한 명인 그와의 만남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조합’이라는 낯선 개념을 만난다.


ⓒ 고함20


Q. 무엇을 외치고 계신가요?
저희가 실질적으로 티브로드 일을 하고 옷을 입고 티브로드 일을 하고 있는데, 티브로드는 저희를 직원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아요. 저희가 비정규직이니까. 그런데도 저희 개개인들은 힘이 없기 때문에, 말 그대로 불합리해도 들을 수밖에 없고 행할 수밖에 없었던 게 저희 입장이었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이 촛불대회를 통해서, 한 명이라도 더 모인 자리에서 우리의 요구사항이나 절실함을 외치러 모였습니다.

Q 구체적으로 뭘 요구하시는 건가요?

직접고용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적어도) 저희가 실질적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서 임금 제대로 못 받는 부분 같은 걸 인정을 받아야죠. 일례로 제가 10년 전에 세전해가지고 240만원을 받았는데 지금은 170만원밖에 안되요. 10년 동안 물가도 올랐는데... 70만원이 오히려 깎였어요. 이것만 봐도. 잘 못 가도 한참 잘 못 가는 거 아닙니까.

Q. 티브로드가 왜 비정규직 노동자를 인정하지 않는 건가요?

(저희 고용관계가) 원칙은 하청이고요. 갑과 을 관계에요. 원청은 티브로드고 하청은 저희 사장(센터장)입니다.

Q, 일종의 도급계약인 거네요?

그런데 원청하고 센터장하고 계약 내용을 저희는 잘 몰라요. 센터장은 원청이 요구하는 부분을 갖다가 자기 편의적으로 직원에게 강요하고. 그러면 저희는 따를 수밖에 없고. 거기에 이골이 난 거죠.

* 하청(도급계약)은 간접고용방식의 하나로, 특정 기업(A사)이 다른 기업(B사)에게 일을 맡기고 돈을 지불해 결과를 수령하는 식의 계약을 의미한다. 이 때 A사는 B사가 그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하는지, 자기가 고용한 노동자들을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간섭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러나 티브로드의 예처럼 고용을 한 기업(고용주)과 일을 시키는 기업(사용주)이 다를 경우, 정규직과 달리 고용주가 사용주의 직원을 책임질 필요가 없기 때문에, 책임소재가 불명확해지면서 노동자가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된다.

 
Q. 오늘 촛불문화제에 앞서 진행하신 온라인 공동행동에서는 어떤 성과가 있으셨나요?
저희 노조가 결성된 지 20일 남짓이 됐는데, 조직 확대에 있어서 온라인을 통해 힘을 많이 얻었어요. 카카오톡 덕을 많이 봤고, 온라인에 블로그도 만들었고요. 이슈가 된 거나 노동탄압 얘기에 관해서 민주노총 본청으로부터 (온라인을 통해) 메시지를 받아서 조언을 많이 얻었습니다. “이렇게 하지 마라, 이렇게 하면 국민법이라든지 노동법에 위배되는 거고, 이런 조치를 받을 것이다”라는 조언이라든가, 해당 노동탄압을 했던 사용자들에게 저항했을 때 성과부분 같은 걸 공유하면서 입체적 연대를 한 거죠. 그리고 메이저신문은 아니지만... 우리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는 인터넷언론 같은 데에 기사가 올라오면 저희가 퍼가지고, 전달하고, 전달하고, 공유하고. 그거를 진짜 무지 많이 했어요. 온라인을 통해 힘을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Q.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통해 연대하는 것이 드문 일이잖아요.
(그동안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겪으면서) ‘우리도 노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C&M 비정규직 노조 결성된 걸 인터넷에서 보게 됐어요. 그래서 C&M 비정규직 보고대회에 참석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기심에서. 그런데 진짜 그 일련의 과정들이나 내용들이 다 내 얘기더라구요. 남 얘기가 아니라. 그래서 그 때 같이 간 5명이서 의기투합해가지고 우리도 만들자. 그렇게 진행돼서 3월 24일에 티브로드 노조 결성식을 하고, 3월 30일에 보고대회를 마치고. 지금까지 진행해 오는 겁니다.

Q. 현재까지 투쟁의 진행 상황이 어떻게 되나요?

저희가 (노조를 결성한지) 20일도 안됐는데. 매일매일 조직 확대하는 과정에서 노동행위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갑자기 팀장직에서 말단직으로 떨어져나가고. 멀쩡히 A라는 지역에서 잘 일하고 있는데 B라는 지역으로 가라는 것들? 이런 것들이 노골적으로 자행되고 있어요. 오늘까지도.

Q. 투쟁을 시작한 이후로 바뀐 것이 있나요?

성과가 전혀 없진 않고요. 영업을 강요하거나. 그동안 기술지표 이런 걸 강요했던 부분에서의 강도가 조금 약해졌다고 할까요. 근데 그것도 일반 조합원들이 피부로 느끼기는 힘들죠. 저야 집행부니까 간부로서... 느끼는 거지. 아직 달라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없어요. 아무리 뒤져봐도 없어요.

Q. 앞으로 어떻게 투쟁해나가실 계획인가요?

저희뿐만이 아니고 저희와 뜻을 같이 하는 C&M 등의 동지들, 진보신당 정치권이나, 소외되는 계층들의 모임들, 시민단체들. 그분들하고 색깔은 다르지만 마음이나 내용은 똑같다고 보거든요. 그걸 한 번 제대로 보여주려고요. 이제는 앞으로 가는 것 밖에 없어요.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하고 싶으신 말씀이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저희는 이미 시작을 했고. 항상 첫 걸음이라고 생각을 해요. 처음에 결성식, 보고대회. 중간에 나름대로의 조직 확대 사업. 그다음에 오늘 촛불 집회가 있잖아요? 그런데 이런 게 있을 때마다 저는 항상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걸 했다고 해서 단시일 내에 바뀔 거라고 생각을 안 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 현실은 인정하고 있거든요. 성과에 자만하지 말고, 진짜 우리의 요구사항이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겁니다.

티브로드 비정규직 노조가 이번 투쟁에 앞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이들 대부분이 하루 평균 2시간 이상의 연장근로(1일 10시간)를 하고 있으며, 월평균 4회의 토요일 근무, 월평균 1.7회의 일요일 당직근무를 하면서도 법정 시간외수당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대다수 외주업체 노동자들이 주6일을 근무하며 유급휴일도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근무환경이 심각하게 열악함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