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에 저항하는 걸 가르치고 연대해서 이길 수 있다는 걸 가르치는 것, 이것이 교육입니다. 이곳이 강의실입니다.”
 

ⓒ고함20

햇볕에 그을려 검게 탄 얼굴, 바싹 말라 갈라지고 터진 입술에서 과연 나올 수 있는 말일까 싶었다. 약 2년이 다 돼가는 긴 투쟁이었다. 몇 번의 물음 끝에 “사실은 누구보다 빨리 반팔을 입을 정도로 더위를 타는 사람인데, (밖에서 시위하다 보니) 몸에 한기가 차서 벌써 추워요”라며 작게 흘리는 목소리엔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대학본부의 강사직 박탈 철회와 대학 시간강사 처우 개선’을 위해 630일째 성균관대 본관에서 1인 시위 중인 류승완 박사다. 

류 박사는 2010년 2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해 봄 학기엔 지도교수와 공동강의도 맡았었다. 그 뒤 1년간 학술진흥재단의 ‘박사후연수 과정’에 선발되어 중국 베이징대학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예정대로 2011년 2학기 강의 배정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그러나 개강을 앞두고 성균관대 측에서 일방적으로 강의를 취소했다. 


Q. 언제부터, 어떻게 시위를 시작하게 되었나요.
 
지난 2011년 8월 11일부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당일인 4월 29일에) 628일 되었네요. 대학이 시간강사의 강의를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철회시켰습니다. 2011년 가을 학기 개강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Q. 성균관대 측이 밝힌 강사 해촉 사유도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처음엔 지난 2000년대 성균관대서 벌어진 등록금 점거농성의 배후인물이라는 이유였습니다. 
 
당시 점거농성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성균관대는 한 해 등록금을 12.7%씩이나 올렸었습니다. 당연히 학생들에겐 엄청난 충격이었습니다. 이런 학교의 강압적인 모습은 학생들로 하여금 점거농성 하게 만들었고, 반면 학교는 전혀 대화의 모습을 보이지 않았었습니다. 오히려 물과 전기 끊고선 학교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명분으로 학생들을 출교시켰습니다. 
 
저는 점거 농성을 말렸었습니다. 농성이 있던 당시에 저는 학교가 아닌 직장에서 일하는 입장이었고, 점거 전날 찾아온 이들을 아주 강력히 말렸었습니다. 만약 점거농성을 말린 것이 간접적 개입에 포함된다면 정말 웃긴 일입니다. 당연히 제가 이에 대해 해명을 했고, 그 뒤에 학교는 말을 바꾸었습니다. 


Q. 그다음엔 강의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가 매우 낮았다는 이유로 류 박사님의 강의 박탈을 주장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학교가 문제 삼은 강의는 지도교수와 공동강의였기 때문에 학생들의 불만 가운데 내용상의 책임이 반이 있는 것은 맞습니다. 저도 강의의 반을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강의평가의 책임을 온전히 저에게 물어서 강의개설을 못 해주겠다는 것은 그 정도가 너무 지나친 것입니다.

그 근거가 빈약하니까 나중엔 저를 채용했을 때 과격한 노조 활동이 우려된다는 것까지 추가되었습니다. 노조 활동이 우려된다고 강사를 채용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절치 않지만, 강사 노조와 관련이 있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몰고 가는 것은 더 황당할 뿐입니다. 근거도 없는 노조 가능성을 갖고서 강사 자리를 내줄 수 없다는 건 대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습니다. 


Q. 왜 이렇게 집요하게 류 박사님을 소위 ‘블랙리스트 인물’로 관리하는 것일까요.
 
저도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단지 만약 그럴 이유가 있다면 제가 삼성이 원하는 강의를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는 2010년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전에 한 시사 프로그램 인터뷰에서 시간강사 정책을 비판했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Q.성균관대학교가 진보적인 강사들을 탄압하는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일까요.
 
꼭 그렇진 않았습니다. 삼성이 재단으로 있는 성균관대는 진보와 보수가 아니라 삼성이냐 아니냐가 관리 대상의 기준입니다. 대표적인 예로 ‘석궁 테러’로 알려진 전 김명호 교수가 대입시험에서 문제가 잘못 출제된 학교에 시정요구를 했다는 이유로 학교에 관리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김명호 교수는 우파적인 교수로 잘 알려졌었지만 성균관대는 그의 주장대로라면 입시 결과가 달라지고 학교 논란이 된다며 보복으로 재임용 거부를 했습니다. 성균관대는 삼성재단과 학교 이익에 들어맞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중요시하는 것입니다.
 

당시 성균관대 수학과 조교수이던 김명호 전 교수는 1995년 대입 본고사 수학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에 김 전 교수는 “문제의 가정이 틀렸으므로 수험생 전체에게 15점 만점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학교는 “채점을 무작정 미룰 수는 없다”며 오류 수정을 거절했다. 이후 김씨는 징계위원회에 넘겨져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받았으며 부교수 승진에서 탈락하고 이듬해 조교수 재임용에도 실패했다. 김 전 교수는 2005년 ‘교수 지위 확인 소송’을 내 “입시오류 지적에 대한 보복으로 재임용을 거부당했다”라고 주장했다. 이 사건은 영화 ‘부러진 화살’로도 잘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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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대학의 시간강사 처우와 관련해서, 성균관대의 강의 배정제도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계시다고요.
 
현행 제도는 강사선정 위원회를 단과대 교수 전원의 만장일치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강사에게 강의를 배정하는 것에 다른 전공의 교수들 모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명의 교수라도 반대를 한다면 그 강의가 열릴 수 없습니다. 이것은 강사의 강의배정이 그만큼 경직되어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Q.류 박사님의 경우엔 강사선정 위원회의 만장일치 심의는 통과 하신 것인가요.
 
그렇습니다. 더 큰 문제점은 실질적인 강의배정권이 단과대 교수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교무팀에게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교수가 아니라 재단이 강사들의 강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단과대 교수 회의를 거쳐 교무팀으로 넘어가는 ‘강의 배정 명단’ 문건을 보면, ‘교무팀에 강사 임명을 추천하기로 하다’로 되어 있습니다. 통보가 아니라 교무팀장에게 학장이 추천해서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되어있는 것입니다. 결국엔 단과대 교수 전체 회의를 해도 결정권이 없는데, 강의 전반에 대해 잘 모르는 교무팀장이 강의배정을 결정하는 것은 우스운 일입니다. 교무팀장이 삼성전자의 재단 상근이사의 통제를 받기 때문에 실제로 대학교육은 재단의 검열을 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대외적으로 강사의 강의 배정을 총장이 관리 한다고 발표하는 대학의 주장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Q. 강의에 대한 의견을 교직원도 충분히 낼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성균관대의 ‘재단 사무국장·상근이사’는 교직원이 아니라 현역 삼성전자 직원입니다. 학교 재단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삼성 '전자’ 소속인 것도 웃긴 일이지만, 이들을 통해서 삼성이 성균관대의 총무 청장과 직원들 그리고 교수들을 통제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국엔 삼성 재단이 교수 인사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교수들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구조에서 교수들이 위축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대학 교육이 교수로부터 시작된다면, 이렇게 경직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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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1인시위가 학교 안팎으로 이슈가 되면서 학교측이 강의를 준다고 밝힌 바가 있습니다. 
 
학교 고위 직원이 당장 1인시위를 그만두면 내년부터 강의를 줄 수도 있다고 했지만, 당연히 거부했습니다. 얼마 전엔 이번 학기에 당장 강의를 줄 수 있는데, 다음 학기부터는 장담할 수 없다고도 했습니다. 사건에 대한 해명과 사과가 없다면 강사들을 약자로써 제압하는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못할 것입니다. 


Q. 학생들이나 관계자들의 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여러 가지 표정변화가 있었습니다. 지금 학생들이 보면 겁먹은 표정이었는데, 이년 가까이 자리를 지키니까 저를 보는 표정이 조금씩 편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의 일이 아니라 우리 학교의 일이라는 생각으로 지나가다 말도 붙이기도 하구요. 이렇게 학생들이 저에게 보내는 관심이 발판이 되어 대학 강사와 강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Q. 강사료도 끊기고, 연구 프로젝트도 계속 지체되고 있습니다. 1인 시위, 앞으로도 계속 하실건가요?
 
학생들의 직원과 성원이 없으면 못했을 것입니다. 매일 시위물들 뜯고, 고발하겠다고 엄포 놓는 과정을 거쳐서 오늘까지 왔습니다. 내일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학교가 강의를 정상적으로 돌려 주고 문제를 해명할 때 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대학에서 기업 재단에 의해 학문이 검열과 통제되는 것을 바로 잡는 것은 중요합니다. 불의에 저항하는 걸 가르치고 연대해서 이길 수 있다는 걸 가르치는 것, 이것이 교육입니다. 이곳이 강의실입니다.


Q. 다른 강사, 교수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것 같습니다.
 
강사님들, 우리는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자유와 정의와 진리를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타협해선 안 되는 불의를 침묵하면서 이런 정신을 가르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입니까. 교수가 되지 못한 강사 선배들이 겪는 고통들은 결코 개인의 문제일 수 없습니다. 강사로써 강의를 할 수 있는 통로가 제한되어 있고, 교수가 될 수 있는 인원도 지극히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강사 처우를 둘러싼 문제들은 분명 구조적이고 사회적인 문제입니다. 교육에 기업 재단의 영향력이 발휘되는 것은 아주 심각한 것입니다. 선배 강사님들. 교수님들. 언제까지 침묵하실 겁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