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책을 통해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같은 노동삼권을 배운다. 권리에 대한 인식이 보편화 되면서, 노동권은 법학 전문도서만이 아니라 인문, 사회 등등 여러 방면의 책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이렇게 권리에 대한 모든 지식을 담고 있는 책들을 보면 제작자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잘 알고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내놓는 책들이 하나같이 인문학적 성찰을 다루며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곳이라면 그 추측은 꽤 그럴싸해 보인다.


하지만 출판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노조 탄압 중단"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는 걸 보면 그 추측이 크게 빗나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다수의 인문서적을 발간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그린비출판사는, 최근 노동조합의 폭로로 편집과정 통제, 과도한 업무량 부과 같은 방식으로 노조원을 압박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파주 출판단지행 출근버스 앞에서 매일 아침 1인 시위를 하는 그린비출판사 김효진 씨를 만나 그 사정을 들어보았다.

그린비출판사 분회 조합원들은 "부당징계 철회"와 "노조 탄압 중단"이 적힌 피켓을 들고 매일 아침 합정역 근처 버스 정류장에서 1인 시위를 하고있다. ⓒ그린비출판사분회


Q. 그린비출판사 분회는 무엇을 외치고 계신가요?
그린비 출판사의 부당징계 철회와 노조 탄압 중단을 요구 중이에요. 지난달에 있었던 편집사고를 빌미로 조합원에게 무리한 징계를 남용하고, 허위사실을 유포한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또 지난해 여름에 결성된 노동조합인 그린비출판사분회를 여러 방법으로 억압하고 있다는 걸 알리는 중이에요. 출판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를 이제는 당당히 말 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저희의 생각이에요.


Q. 우선 '편집사고'는 어떤 내용이었고 이에 대한 사측의 징계가 왜 부당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노조 조합원인 편집자가 책의 교정 과정에서 실수했고, 그 때문에 책의 초판을 다시 인쇄하는 일이 있었어요. 당사자는 본인의 과실을 인정한 상태에요. 하지만 이런 실수가 잉태된 이유는 개인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사측의 무리한 편집 프로세스 요구가 있어요. 게다가 버젓이 출판사에 소속된 편집자의 실수를 그 상급자와 출판사가 분담하지 않고 오직 해당 편집자에게만 묻고 있는 건 너무 부당하다고 생각해요. 이전에도 이런 편집실수들이 분명 있었지만 징계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고, 또 그 이유가 해당 사건이 아닌 노동조합 결성 때문이라는 정황들이 많기 때문이에요. 사측의 강요로 바뀐 새로운 편집 프로세스는 노조 결성을 견제한 것이라는 게 저희의 주장이고요. 


Q. 저도 초판 책들을 보면 오타나 그림삽입이 살짝 어색한 부분들을 발견한 적이 있어요. 분명 단행본이 다 만들어지고도 편집사고는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런 실수들에 대해 징계를 하지는 않았던 거군요.
예전에도 편집 일을 하다 보면 실수나 사고가 있었어요.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작업이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서로 이해할 수 있고, 편집 실수로 징계위원회를 소집하지도 않았어요. 그래서 이런 사고로 내려진 징계를 두고 출판사가 이상하리만큼 과민반응을 보인 것으로 판단했어요. 사정을 알아보니 지난 해 결성했던 노조에 대한 불만이 반영된 것 같더군요.

실제로 징계 당사자에 관한 이야기가 오고 갈 때 노조 자체에 관한 불만도 함께 있었어요. 함께 일하는 곳에서 왜 노조를 구성했느냐는 것이었어요. 회사는 (노조활동을) 상급자에 대한 도전, 항명, 직장질서 문란이라고 받아들이는 식이에요. “상급자에게 공개적으로 대들면서 질서를 문란케 했다”는 식이었어요.


Q. 편집 프로세스의 변화가 노사 결성 이후 사측이 보여준 대응이라는 말씀이시죠?
네. 그린비출판사에 노조가 생긴 이후 편집자들은 말도 안 되는 편집 프로세스를 요구받았어요. 편집자들이 일하는 과정을 엄청나게 통제하고 무리한 업무를 요구한 것이죠.  


Q.기존의 단행본 편집 공정과 비교해 어떤 변화가 있었어요?
단행본 편집 과정을 간단히 설명하면 이런 모습이에요. 가장 먼저 출판사가 원고를 인수받아요. 그다음 원고 담당자인 편집자가 정해지고, 그 편집자가 오탈자부터 책 내용의 타당성 등을 모두 확인하고 수정해요. 책 한 권이 인쇄되기 바로 직전까지 모든 과정을 편집자 한 사람이 담당하는 셈이죠. 회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담당편집자의 재량이 반영되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그린비출판사도 기존에는 책을 만드는 과정에 담당 편집자의 자율을 잘 보장해 줬어요. 물론 일정 부분의 통제가 있긴 했지만, 적어도 편집자가 만족할 수 있는 책 편집을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노조를 결성한 뒤,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면서 사측은 편집과정의 자율성을 많이 축소했어요. 게다가 터무니없이 높은 업무량을 요구하기까지 했고요. 


Q. ‘편집과정의 자율성 침해‘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들을 일컫는 건가요?
하루 동안 교정을 봐야 할 쪽수를 무리하게 올렸어요. 글을 쓰는것도 마찬가지지만, 쓰인 글을 읽고 교정하는 것도 항상 같은 분량을 해낼 수 없는 작업이에요. 글쓴이 따라 원고의 정리상태가 제각기이고, 난이도도 다 달라요. 상식적으로 같은 쪽수를 편집해야 할 때 책마다 걸리는 시간이 다 다를 수밖에 없어요. 이렇게 정량화할 수 없는 편집 분량을 어느 책이든 똑같이 정해 놓는 것이 문제고요. 

더욱이 이렇게 정해놓은 양이 이전과 비교해 말도 안 되게 많아졌다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원고를 처음 받아본 숙련자가 겨우 하루 20~30페이지 정도를 해낼 수 있는 것을 무작정 “50페이지 해낼 것”이라고 못 박는 식이에요. 실제로 저희에게 하달된 분량이 첫 교정 때 하루 50쪽, 두 번째 교정 7~80쪽, 세 번째교정 100쪽이었어요. 같은 업계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말 그대로 “뜨악했다”고 하더라고요. 정상적인 작업시간으로는 불가능한 분량이라는 것이죠. 

이렇게 편집 프로세스를 바꿔놓은 사측에 문제 제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돌아오는 반응은 “경영권에 대한 월권”이라는 훈계였어요. 


Q. 작업량이 두 배나 늘어난 셈인데, 그럼 추가근무나 야근을 하지 않고는 당일 분량을 채우기 힘들겠군요. 추가근무 수당은 있었나요? 
노조가 생기기 이전에는 작업속도에 비해 과도한 분량의 업무가 떨어져서 야근이 일상적이긴 했어요. 그리고 업무량 증가는 점점 더 심각해졌고요. 노조가 생기는 과정에서 이런 부분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고, 그래서 회사에서는 노조가 생기려는 움직임을 감지해 그 즉시 ‘야근 금지’를 내걸었어요. 여기까지가 1단계. 그리고 노조가 생겼고, 이때부터 유형무형의 탄압이 시작되었죠. 그 탄압의 결정체가 ‘편집 프로세스 변경’이었고요. 이제 야근을 안 하기 때문에 야근이 일상적일 때보다 개별 노동자가 해낼 수 있는 일의 양이 줄어드는 것이 당연한데, 회사는 오히려 일의 양을 늘려서, ‘너희들이 원하는 정시퇴근도 하고 우리가 원하는 노동량도 채워라’라고 해온 거예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무조건 저 분량을 채우고, 일찍 퇴근하라는 것이었죠. 야근 많은 것을 문제 삼았으니 야근은 없애주겠지만 일의 양은 못 줄여 준다, 오히려 요즘 회사가 어려우니 더 많은 책을 내야 한다는 해괴한 논리였어요.

그래서 추가 근무 수당이 없던 것은 야근이 많던 예전 시스템의 문제예요. 편집 프로세스(업무량 증가) 이전에는 야근이 일상적이었지만, 이제는 야근은 안 해요. 대신 회사가 요구하는 분량을 채우지 못하면 관리자에게 불려가서 계속 압박을 받아야 했고, 그 압박에 쫓겨 급하게 일을 하다 보니 이번 편집 사고로 부작용이 터져 나온 셈이고요.

회사는 노동자들이 우려를 표했음에도 ‘사고 가능성’을 높이는 편집 프로세스 변경을 강행했어요. 노동자들의 우려처럼 사고가 발생하자, 그 책임은 개별 노동자에게 징계로서 전가했죠. 그러나 징계 당사자도 그렇고 노조도 그렇고, 편집 사고에 대한 징계는 적정선에서 이루어지면 받겠다고까지 했고요. 그러나 회사는 이런 객관적 사고 사실에 대한 징계에 그친 게 아니라, 근무태도 불량이니 이전 근무성적 불량이니 따위를 징계사유에 덕지덕지 붙여서 과잉한 징계를 시도습니다. 노조가 반대하는 것은 이 과잉 징계에요.


Q. 노조설립 이후 사측의 압박들, 어떤 것들이 있었나요? 전해 듣기로는 전체 회의 같은 소통 기회가 사라졌다고 들었어요.
예전엔 전체 회의를 매주 한 번씩 했어요. 그게 활발한 토의를 이뤄지는 자리는 아니었어도 각자가 담당한 편집과정이 잘 되고 있다는 것을 공유하는 자리였어요. 편집자들에게 있어 내가 맡은 편집의 책임과 자율성을 인정받는 것이었죠. 또 편집자들이 회사에 대해 의견을 직접 제시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했고요. 그런데 이런 기회가 다 봉쇄가 된 셈이죠. 노조 설립 이후에 일어난 일이에요.
 
심지어 사내 인터넷에서 편집업무와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면 몽땅 차단되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회사가 정말로 기계적인 곳이 되어버린 것이죠. 사측은 이런 변화의 이유를 (노조가 생겼으니) 회사를 “회사답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어요. 하지만 노동자들의 당연한 노조설립 권리와 회사의 편파적인 통제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노동이 가능한지 아닌지를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달성하라”는 식으로 강제하고, 이에 대한 문제 제기 통로를 원천봉쇄하는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Q. 적은 수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는 공간이기 때문에 노동조합 활동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작년 7월 말 분회(노조)를 결성했으니까, 이제 곧 1년을 바라보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과정을 돌아보면 앞서 말씀드렸듯이 쉽지는 않았어요. 오래전부터 내려온 부당한 관습들이 있었어요. 가급적 출판사 내부에서 해결하려고 했고, 혼자 활동 하기보다는 같은 편집노동자들이 함께 행동하자는 취지였어요. 규모가 너무 작아서 그런지 오늘날 사람들에게 출판사의 악습들을 고발하기까지 쉽지만은 않았어요. (1인시위 및 SNS를 통한 활발한 노동조합 활동을 한 이유도) 결국 내부 관리자들이 저희 의견을 들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출판사 외부세계로 곪은 문제들을 알리게 된 것이에요.
 
지금 그린비출판사는 총 17명의 구성원이 함께 일을 하고 있고 그 중 8명이 편집을 담당하고 있어요. 그린비출판사가 작은 규모는 아니지만, 다른 직종에 비해 사람이 적기 때문에 모두가 다 얼굴 보며 일 하는 관계에요. 그래서 처음 분회가 생기고, 분회원과 분회원이 아닌 사람들의 사이가 멀어졌을 때 모두가 많이 불편하기도 했어요. 기존의 관행대로 운영하는 게 편하신 분들에게 노동조합을 구성하고 출판사의 고쳐야 할 부분들을 콕 찝는 활동이 좋게만 보일 수는 없을 거에요. 노조가 생기는 국면에서 노사가 갈등이 벌어지는 게 싫다고 나간 분들이 꽤 계셨으니까요. 

또 1인 시위나 SNS 같은 것에 회사 얘기를 할 때, 다른 출판사 분들도 많이 공감해 주고 응원을 해 주세요. 부러워 하시는 분도 더러 계시고요. 대부분의 출판사가 영세 규모라서 저희 못지않게 편집자들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려운 구조에요. 저희뿐만 아니라 출판계 전반적으로 노동조합 구성부터가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아요.


Q. 지금은 회사와 분회와의 관계가 일 년 전보다는 발전된 부분이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겉으로 드러난 부분은 많은 발전이 있었어요. 최근 사측의 부당한 처사를 비롯한 이번 징계 사건이 언론에 많이 알려지면서, 경영진도 분회의 입장을 가능하면 수용해주겠다고 반응해요. 물론, 실제로 대화를 하게 되면 여전히 두 입장 간의 좁혀지지 않는 부분들이 존재 하지만요. 

우선은 출판사에서도 분회가 조직될 수 있고, 충분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출판노동자들의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게 어느 정도 보인 것으로 생각해요. 


Q. 징계를 비롯한 여러 안건의 협상을 이제 막 시작하셨다고 들었어요. 
교섭 위원 협상 이제 막 시작했어요. 회사에 대해 노조가 생각하는 필요한 노동조건들을 단체협상 안으로 만들어서 회사에 제시하고. 또 회사와 이에 대해 서로의 의견을 대화로 풀어나가려 하고 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단체 협약을 잘 체결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출판 노동자가 직접 참여해서 회사의 규칙을 함께 정비하는 것인 만큼 각오도 다지고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하루빨리 회사와의 신뢰관계를 회복하고 싶어요. 또 독자들에게도 더 좋은 질의 책을 선보이고 싶어요. 


Q. 출판계의 노동조합이 아직은 극히 소수인데요. 다른 출판 노동자분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씀 있으실 것 같아요. 
저희가 출판계 안에서 노조 일원으로 활동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는 게 처음이라고 해요. 그래서 관심들도 많이 가져 주시고 있고, 한편으론 "그린비 노조, 너무 강경하다. 앞서나간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아요. 하지만 저희가 이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충분히 있었고, 다른 출판사 내부에도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고 계실 거라고 생각해요. 출판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조합이 있다면 하나 둘 씩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최근 1인 시위를 합정역 근방의 버스정류장에서 하고 있어요. 파주 출판단지까지 다니시는 분들이 셔틀버스를 타는 곳이에요. 다른 출판사 분들이 보시면서 힘찬 응원도 해 주시고, 먹을거리를 슬쩍 전해 주고 가시는 분들도 있으셨어요. 정말 힘을 많이 얻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