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로망 혹은 낭만

 낭만과 여행이라, 거 참 그럴싸한 조합이다. 여행만큼 낭만이란 단어에 어울리는 것이 또 있을까싶다. 누구에게나 마음 속 한자락 고이 모셔둔 여행지가 있을 법하고, 그 여행지를 그려보면 그려볼수록 그 설렘은 한껏 부풀어 올라 모두를 한껏 들뜨게 한다. 고된 삶과의 레슬링에서 케이오 패 당한 사람들아. 부딪쳐 멍들고 까진 너희 영혼의 상처회복에 특효약은 올 A+ 학점도 아니요, 토익 900점도 아니요, 취업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일상에서의 탈출일 것이다. 우리가 그 동안 일상이라는 러닝머신위에서 쉬지 못하고 달려왔다면 잠시 stop을 눌러놓고 내려와 한숨 돌리는 ‘,(쉼표)’도 필요한 법이니까, 일생에서의 탈출. 아, 이것이 바로 여행의 로망, 혹은 낭만이라고 하겠다.

모두들 꿈꾸는 영화 속 주인공

 특히나 낭만적인 여행지하면 해외의 여러 아름다운 도시를 생각하기 마련이다. 저마다 ‘이곳이 바로 낭만적인 여행지’라며 사람들을 유혹한다. 영화관을 점령한 해외영화들과 한국드라마의 잦은 해외로케가 이런 심리를 더욱 부추긴다. 비록 구운몽으로 끝났을망정, 2달 동안 박신양과 김정은의 만남의 매개가 된 파로 그 곳 파리. 영화 ‘섹스 인 더 시티’의 캐리의 일터이자 삶의 공간은 바로 뉴욕이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뉴욕에 가면 모두 캐리같이 패셔너블한 커리어우먼들이 도로를 활보하고 있을 것만 같고 맛있는 브런치 카페의 천국이다.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원스’는 주인공들의 애절하고 감미로운 노래로 두고두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기억되겠지만 영화를 보다 돋보이게 한 것은, 노래와 함께 어우러진 아일랜드의 풍광들이다. 여자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처음 만났던 거리, 그들이 함께 걸었던 산길들, 바닷가 절벽에서 확 트인 바다를 함께 바라보는 주인공들의 애틋한 마음을 더욱 잘 드러내 주었다. 

여행≠낭만 but 여행=고생

 하지만 여행의 또 다른 이름은 ‘고생’이다. ‘집 떠나면 고생이다’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괜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만일 여행의 낭만을 깨고 싶지 않은 독자라면 여기서부터 스포일러를 주의하시라. 우선 여행의 준비과정부터 만만치 않다. 계획 없이 훌쩍 떠다는 여행의 낭만도 이야기하자면 또 끝이 없겠지만, 일단 계획을 세우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날짜, 경비, 교통과 숙박 예약 과정에 이르기 까지 신경 써야 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계획을 세우다보면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지치기 일쑤다. 시험공부 하는 기세로 밤낮으로 완성해 보기만 해도 므흣해지는 완벽한 계획을 세웠다 해도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낭만적인 여행을 방해하는 일들은 이제부터 시작될 테니까 말이다. 웹사이트에서 본 사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숙박시설과 (어쩌면 제공되지 않을지 모르는) 부실한 아침식사. 가이드북에 쓰여 있는 것 보다 항상 올라있는 입장료들은 나를 슬프게 만든다. 행여 들뜬 마음으로 도착한 그곳이  공사라도 하고 있다면 실망감을 숨기지 못할 것이다. 지겹도록 내 팔을 이끌어 대는 호객꾼과 시시탐탐 나의 가방을 노리는 소매치기도 경개대상 1호. 이 모든 역경들도 이겨냈다 하더라도 너무 덥거나 혹은 춥거나 비가 내리는 날씨는 내가 기대했던 낭만적 여행을 방해하는 최대의 적이다. 


 낭만적 여행이여

 당신이 꿈꾸는 낭만적인 여행은 없다! 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여행이라는 것은 언제나 우리의 기대를 벗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로맨스는 없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여행을 통하여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에너지를 얻으며 삶의 동기를 부여해주는 자극제를 얻는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오늘도 우리는 일상의 탈출을 꿈꾸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