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인 유정씨는 10년째 신문배달 중이다. 오전엔 경향신문, 오후엔 문화일보를 맡고 있다. 호적도, 주민등록번호도 없는 그녀에게 신문배달은 생계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유정씨가 처음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깨닫게 된 건 초등학교 3학년, 다른 남학생들과는 다르게 스킬과 자수를 좋아했던 그녀는 하늘을 보며 자신이 남자가 아닌데 남자로 태어났다는 사실과 내가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게 일상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집에서 쫓겨나 부모님의 실종신고로 ‘사망’처리 되었고 43세가 될 때까지 신분증 없이 살았다.

ⓒ 네이버 영화 <2의 증명> 포스터 사진


지난 11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다큐 <2의 증명> (감독 스이, 케이) 상영회가 열렸다. 다큐 <2의 증명>은 트랜스젠더인 유정씨가 법적인 ‘여성’으로 살 수 있는 장치인 인우보증을 통한 성별 정정 신청을 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인우보증: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의 증명을 통한 성별정정방법) 현재 대법원 판례를 보면 성전환자가 성별 정정을 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성별과 반대성으로서의 외부성기'를 갖추도록 요구하고 있다. 사회적 차별과 소외로 인해 경제적 약자로 살아온 트랜스젠더에게 천만원 이상이 드는 성전환 수술은 이루기 힘든 꿈이자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정씨에게 '인우보증'은 성별정정을 위해 시도할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이다.

다큐를 찍는 중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등장했다. 성별정정 신청을 위해 유정씨가 주민등록을 살려내면서 그 이전엔 생기지 않았던 문제들인 빚과 관련된 재산 압류 문제, 자동차 무면허 벌금 문제 등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27년간 신분증 없이 살아온 그녀에게 ‘무면허’ 신문 배달은 생계유지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100만원의 벌금이 내려졌다. 

유정씨 주변인들도 하나의 변수로 작용했다. 주민등록 번호도 없이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곤 신문 배달 뿐이었던 그녀를 이용하고 제대로 된 임금조차 주지 않았던 각 지역 신문 지국장들은 성별정정이 이루어졌을 경우 더 이상 그녀를 이용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인우보증 작성을 그만둔다. 결국 다큐는 성별 정정이 성공하는 극적인 장면을 담아내는 대신 주민등록 뒷자리를 1로 가지는 여성이 겪는 현실 자체를 담아내는데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

다큐 상영이 끝난 후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누군가 지금 유정씨는 어떻게 지내냐는 질문을 던졌다. 한숨을 내신 스이 감독은 “이 질문만은 나오지 않길 바랐다. 유정씨는 신문 배달을 그만두고 식당에서 일했다가 다시 신문배달 일을 하고 있다. 성별이 정정되기 전까지는 바뀌지 않는 현실이다.”고 말하며 "성별정정을 하지 않으면 취업을 할 수 없고, 취업을 하지 않으면 성기 성형을 할 수 없는 구조다."고 덧붙였다.

유정씨로 대표되는 트랜스젠더의 삶과 동시에 다큐를 관통하는 또 다른 주제는 '개인의 성별을 누가 규정하는가'이다. 모든 상영회와 GV가 끝나고 스이 감독을 붙잡고 미쳐 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졌다. 성별정정 신청을 할 경우 법적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스이 감독은 “존재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해서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법제 자체가 어떤 관념을 기반으로 만들어졌는가에 대한 고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답했다. 덧붙여 “자신의 성별을 자기 자신이 아닌 누가 증명을 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중요한건 성별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자신의 의지가 얼마나 반영되는 가에 대한 고민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3월, 성기 성형을 하지 않아도 성별 정정이 가능하다는 법원의 첫 판례가 나왔다. 그러나 이것 역시 '기존 성별의 생식 능력을 제거한 후'라는 조건이 전제되어 있어 유정씨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부분이다. 유정씨에게 성별정정요건은 희망보다 고문에 가깝다. 바뀌지 않는 현실에서 ‘인간 답게’ 살기 위한 유정씨의 ‘희망고문’이 계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