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씨는 2012년 7월부터 같은 해 11월까지 일러스트 제작사 팝픽(poppic)에서 일했다. 팝픽 아카데미에서 한 달간의 교육과정을 이수하고 실무를 제안 받았다. 100만원의 급여를 구두로 약속 받고 일을 시작했지만, 한 달 뒤 작업량과 수준이 미달 된다는 이유로 반으로 깎인 페이, 속칭 '반(半)페이'를 받았다. 실급여는 세금을 공제한 48만원이었다. 출근 시간은 오전 9시 30분. 따로 정해진 퇴근 시간은 없었다. 많은 직원들이 밤 10시가 넘는 시간까지 작업을 했다.


작업장에는 ㄱ씨를 비롯한 20대 초중반의 사회 초년생들이 일하고 있었다. 대부분 비슷한 조건에서 일을 했다. "약 30명 정도였어요. 실력이 없다는 이유로 '반페이'를 받은 사람은 저와 몇 명 뿐이었습니다.” 모두가 과로하는 상황에서 열악한 노동조건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있었다. "개선해보자는 의견은 있었지만, 어려운 회사 사정 및 불충분한 작업자들의 실력을 이유로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팝픽의 근로 기준법 위반 및 노동 착취가 논란이 되고 있다. 팝픽은 국내에서 가장 큰 그림 및 일러스트 커뮤니티인 네이버 카페 방사(방방곡곡 창작을 배우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크게 성장했다. 게임 리소스 그래픽 학원으로 먼저 설립된 후 팝픽소프트, 팝픽북스, 팝픽아카데미 등을 만들며 몸집을 키웠다.


업계에서 팝픽의 영향력은 상당하다. 일단 국내에서 팝픽북스처럼 게임, 애니메이션, 만화 등 서브컬쳐 일러스트레이션을 주제로 발행되는 잡지는 그 수가 적다. 또한 팝픽소프트는 외주회사로서의 역할을 하며 프리랜서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러스트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다. 제공되는 인력이 저렴하다는 점도 한몫 했다.


ㄴ씨도 아카데미생 자격으로 팝픽에 발을 들인 경우다. 2010년 초부터 2011년 8월까지 약 일년 반 동안 일했다. 팝픽에 소속된 A씨를 2010년 방사 회원 모임에서 만난 것이 계기였다. 입사 후 외주업무에 투입되어 '그림'을 그렸다. 외주 작업임을 누구에게도 공지받지 못한 상황이었다.


그는 2011년 초 송 대표에게 ‘강남 크로키 오프라인 학원에서 A씨를 도와 학원 관리 업무를 하라’는 지시를 받기도 했다. 학원에서 일을 하며 크로키 강의도 들을 수 있다고 했다. 송 대표는 같은 해 중반 ㄴ씨에게 ‘그림 실력이 느는 마지노선에 도달했다’며 휴학이나 퇴학 후 외주 작업을 하라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학교와 팝픽, 두 곳의 생활을 병행하기가 힘들어 휴학을 했습니다." ㄴ씨가 본격적으로 각종 ‘심부름’에 투입된 때였다.


"천호동 쇼핑몰에서 T-PIC(그림을 티셔츠에 프린팅해 판매하는 프로젝트)오프라인 매장을 관리했습니다. 밤샘 작업을 하고 새벽에 잠깐 잘 수 있었어요." 작업이 끝나면 아침마다 가락시장 인근에 위치한 송 대표의 자택에 들러야 했다. 송 대표가 ㄴ씨에게 자신을 깨우러 올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송 대표의 자택 근처에서 밤샘을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아침식사는 송 대표를 깨우러 이동하는 한 시간 동안 가능했다.


근로 계약서는 없었다. 송 대표는 ㄴ씨에게 ‘OO이에게 추천 받았으니 딱히 안 써도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림쟁이들은 입사 할 때 근로 계약서를 쓰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관행이죠. '식구'라는 인식이 강해서 그런 것 같아요." 


문서상 규정된 업무 내용이 없는 탓에 업무량은 불규칙적이었다. ㄴ씨는 대형 채색 작업물 한 장을 하루에 두 장 그린 적도 있다. 완성하는 데 평균 이틀정도 소요되는 일이다. "하루에 15장씩 작업물을 찍어낸 적도 있어요. 규모가 작더라도 그렇게 일주일 연속으로 찍어내는 건 한계가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고갈되니까요." 급여도 마찬가지였다. "크로키 비용 빼고, 학원비 빼고, 그림 못 그리는 대가로 빼고, 또 그림 안 그리고 논다고 빼고, 그래서 30만원 이었어요. 40만원도 많이 주는거라고 하더군요." ㄴ씨는 8월에 퇴사를 결정했다.



ㄴ씨가 제공한 팝픽의 급여 입금 내역. 금액이 일정하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ㄴ씨의 소송계획을 들어보았다. 현재 가지고 있는 증거들로 노동청에 문의중이라고 했다. "2010년도 입증 자료는 증거로 하기엔 양이 적고, 통장 기록이 말소되어 포기했어요.” 그는 2011년도의 임금 체불을 중심으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고소에 참여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중순, 팝픽 피해사례 구제 등을 위한 임시대책위원회가 방사 카페 안에 꾸려졌다. 팝픽 임시대책위원회의 파나마만(필명)씨는 일러스트 회사로서 팝픽의 시작을 알린 잡지인 <팝픽 1호> '오리엔탈'의 표지를 맡았다. 그는 팝픽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아니지만 사태 해결을 위해 소송 진행에 참여했다. "당시 출판사 이름은 'BRAND NEW DAYS'였습니다. <팝픽 4호> '로봇'부터 ‘팝픽북스’로 이름이 바뀌었죠." 이 시기는 팝픽 아카데미와 팝픽 소프트가 설립되는 시기와도 겹친다. 한달 급여의 '반페이', 즉 시간당 최저시급 344원의 착취는 여기서 시작됐다. 피해사례가 하나 둘 터져나오자, SNS에도 팝픽과 관련된 피해 증언이 속출하고 있다.

“방사 커뮤니티로 팝픽을 알게 된 후 아카데미에 상담하러 가는 학생이 많았습니다. 대부분이 '배우면서 일 할수 있다', '외주로 실력을 키워라' 등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6개월분 급여로 총 67만원을 받았다는 분도 있습니다. 교육비는 교육비대로 받아 간 것이죠.” 그는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작가들에게 좋은 등용문이 된다는 점을 악용해 무보수로 그림을 받아서 출판하는 등 '팝픽 테마북 시리즈'의 횡포가 상당했다고 말했다. 테마북 시리즈에 참여한 작가들에게 약속된 인센티브가 있었지만, 팝픽 1호의 경우에만 일부 지급되었다. 이후에 참여한 대부분의 작가들은 인센티브를 받지 못했다.

팝픽 관련 피해사례들은 현재 서울 동부지방검찰청에 접수되어 있으며, 소송은 담당검사의 지휘 아래 노동법 위반 여부 수사에 들어간 상태다. 송 대표 기소 여부는 수사결과에 따라 결정된다. 근로기준법위반, 저작권법위반, 횡령, 사기, 배임의 죄목으로 고발과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이 추가되어 있다. 여기에는 팝픽의 직접적인 피해자들과 본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임금체불과 권리에 관련해 소송인단으로 참여하고 있다. 송 대표와 피해자들은 아직까지 접촉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6월 30일자로 팝픽은 폐업한 상태다. 그러나 SNS상의 게시물과 몇몇 언론의 보도를 통해, 팝픽 측이 CG스튜디오인 '브론즈아이', 아카데미인 '브러쉬박스'를 같은 도메인으로 설립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원래 펀딩을 진행해서 비용을 모은 후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계획이었으나, 팝픽 측이 책 재고를 덤핑 처리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여 지체하기 어려웠습니다.” 일단 대책위 내부에서 소송비용을 모으고, 부족한 자금은 트위터를 통해 모금했다. “뜻있는 분들이 협력해주셔서 22분만에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곧 펀딩을 통해 책과 엽서, 액자 등을 판매해 추가 소송비용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초과 달성된 모금액은 그림을 그리고 싶지만 미술 도구가 없어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들을 위해 전액 기부된다.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금된 액수는 8천만원 정도로, 목표금액을 훨씬 웃돌며 7월 20일 마감됐다. 

파나마만씨는 팝픽이 일러스트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실제로 일러스트레이션 아웃소싱 시장은 활성화 된지 얼마 되지 않아 팝픽은 영세한 기업에 속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착취의 방식은 다른 갑들과 다를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이러한 횡포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선례를 남기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