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20대가 취업 걱정에 시달린다. 2012년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와 한국보건사회연구소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20대 59.9%가 ‘나의 삶이 불안하다’고 답했다. ‘삶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으로는 취업불안이 55.2%로 1위를 차지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올해 3월 기준 20대 고용률은 55.8%에 불과하다. 게다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는 점차 벌어지고 있다. 올해 1~3월 정규직의 평균 월급은 253만 1000원, 비정규직의 평균 월급은 141만 2000원으로 112만원이나 차이가 난다. 그러다보니 20대들은 자연스레 안정적인 직업인 대기업 정규직, 공무원 등만을 바라본다. 올해 서울시 7,9급 공무원 임용시험 평균 경쟁률은 87.3대 1 이었다. 작년에 채용을 실시한 상장기업의 입사 경쟁률을 취업 포털사이트 인쿠르트에서 조사한 결과 대기업은 108대 1, 중견기업은 145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몇몇 20대는 눈을 돌려 창업을 한다고 하지만 주로 IT 벤처 기업에 국한되어 있다.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20대의 사회적 상상력은 사라지고 있다.

‘원도심 사회혁신로드’는 20대들의 부족한 사회적 상상력을 키워주는 여행이다. ‘원도심 사회혁신로드’는 사회적 자본을 활용한 대전 원도심 공정여행 프로그램 중 하나다. 프로그램의 운영은 청년 여행사회적기업 공감만세가 맡는다. 원도심 활성화 시민공모사업의 일환으로 대전문화재단과 대전광역시로부터 사업비를 지원받아 여행의 참가비는 무료다. 여행을 통해 대전의 원도심(대흥동, 선화동, 은행동) 일대에 자리 잡은 문화예술공간과 사회적 자본들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 중에서 ‘원도심 사회혁신로드’에서는 대학생, 청년을 대상으로 원도심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청년창업팀을 탐방한다. 평소엔 접하기 힘든 생소한 분야의 기업들이다. 대기업, 관공서, IT 벤처 기업 등에만 머물러 있던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다. 6월 28일, ‘원도심 사회혁신로드’에 직접 참여해봤다.



‘원도심 사회혁신로드’의 시작 장소는 공감만세 사무실이었다. 공감만세는 여행 운영 단체이면서 동시에 여행 대상이었다. 먼저 공감만세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공감만세는 ‘공’정함에 ‘감’동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의 줄임말이다. 고용노동부의 인증을 받은 사회적기업으로 공정여행을 진행하는 일을 주로 한다. 20대 청년들이 뭉쳐서 만든 청년 기업이기도 하다. 공감만세에서는 공정여행을 패키지여행과 다르게 소비가 아닌 관계를 지향하고, 윤리적인 소비를 하며, 스스로 만들어 가는 여행이라고 정의한다. 이 날 여행 가이드 역할을 한 공감만세의 조수희 여행운용팀장은 “20대 청년들이 대학생 때 같이 뭘 해보자며 모였다. 기성세대의 순리를 따라가지 말고 주체성을 가져보자고 했고, 그 결과 공정여행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행을 생각했던 이유는, 여행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고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 대해 말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어서 “최종적으로는 공감만세가 사라지는 것이 목표다. 모두가 공정여행을 하는 날이 오면 굳이 공감만세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여행 참가자들이 자신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종이에 자화상을 그리고 자신을 표현하는 5가지 단어를 적은 뒤 이야기를 나눴다. 조수희 팀장은 “자기가 주체성을 가지고 여행을 하자는 취지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고 여행을 하자.”고 말했다. 10여명의 여행 참가자들은 단편적인 직업, 나이에 대한 소개가 아닌 자신에 대한 진솔한 소개를 했다. 공통 관심사를 발견하며 처음 보는 참가자들끼리 가까워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공감만세 사무실을 나와 첫 번째로 향한 곳은 월간토마토에서 운영하는 북카페 ‘이데’였다. 월간토마토는 2007년 5월에 창간호를 발행한 문화 예술 월간지다. 월간토마토의 조지영 팀장은 “월간토마토는 대전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공간, 사람, 그리고 기록을 테마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잡지를 발행하는 일이 굉장히 어렵다며 “정말 망하게 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잡지를 하라고 꼬시라는 말이 있다.”는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북카페 ‘이데’는 문화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조지영 팀장은 “‘이데’에서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상상력이 자극되길 꿈꾼다.”고 말했다. ‘이데’에서는 지역의 젊은 작가들에게 무료로 전시 공간을 대관해주고 소규모 공연도 펼쳐진다고 한다. 뒤이어 ‘이데’의 음료를 마시며 지역 잡지, 문화 예술에 관해 함께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끝난 후에는 예비사회적기업 다문화레스토랑 ‘I’m Asia(아이맛이야)’로 자리를 옮겨 점심 식사를 했다. ‘아이맛이야’는 대전 지역 다문화가정 여성들의 일자리 창출을 목표로 한다. 음식 조리부터 서빙까지 결혼이주여성들이 직접 맡는다. 베트남 튀김만두 ‘짜요’, 태국 ‘얌운센샐러드’, 베트남 볶음밥 ‘껌칭틱까’, 캄보디아 부침개 ‘반차오’, 태국 볶음국수 ‘팟씨유꿍’을 차례로 먹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다른 참가자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세계 여러 나라의 전통 모자를 써보는 기회를 가졌다.



점심식사 후에는 과일가게 ‘사과나무’로 이동했다. ‘사과나무’에서는 과일과 함께 생과일주스를 판매한다. 이민형 사장은 “화학첨가제가 들어가지 않고 과일 비율이 50%가 넘는 진짜 생과일주스를 판매한다.”고 말했다. 보통 과일주스는 과일 비율이 10%가 안 된다고 한다. 이어 “주력 판매 상품은 컵과일”이라고 말했다. 테이크아웃 커피잔 같은 용기에 과일을 넣어 판매하는 것인데, 언젠가는 거리에서 컵과일을 먹는 문화가 정착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사과나무’에는 아기들이 마음껏 놀 수 있는 작은 공간이 있었다. 이민형 사장은 “어머니들이 유모차를 끌고 와서 과일을 먹으며 마음 편히 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과일이 맛있으면 가게가 망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에 과감히 가게를 열었다는 이민형 사장은 과일에 대한 지식이 정말 풍부했다. 참가자들과의 질의응답 시간에는 맛있는 과일을 고르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오갔다.



문화예술레지던시 ‘산호여인숙’, 지역품앗이 ‘원도심레츠’를 거쳐 마지막 여행지인 여행자카페 ‘도시여행자’로 향했다. ‘도시여행자’ 박은영 공동 대표는 “일상의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여행이라 할 수 있다.”며 “‘도시여행자’는 소통의 매개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도시여행자’에서는 여행자들을 위해 여행 일정을 짜거나 항공권을 예매하는 것 등을 도와주기도 한다. 젊은 예술가들이 저렴한 가격에 전시를 할 수 있도록 한 평 갤러리도 마련되어 있다. 박은영 대표는 장터유람기라는 여행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도 소개했다. 사라져가는 장터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2010년에는 ‘도시여행자’를 같이 운영하는 김준태 씨와 5군데의 5일장을 돌아다니며 상인들에게 미숫가루를 타드렸다. 2011년에는 인디 밴드 자판기 커피숍과 함께 캠핑카를 타고 장터유람기를 떠났다. 작년에는 4팀으로 구성된 20명의 친구들과 장터유람기를 진행했고, 올해에도 장터유람기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모든 여행을 마친 뒤 공정여행 증명서를 받는 것으로 일정은 마무리됐다. 증명서를 받은 참가자가 다음 참가자에게 덕담과 함께 증명서를 전해주는 특이한 방식이었다.

이 날 ‘원도심 사회혁신로드’에 참가한 정진숙 씨는 “일을 의무로서 하지 않고 즐기면서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했었는데 오늘 여행에서 만난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방법을 구체화시킬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평소에 원도심 지역을 자주 다닌다는 이재택 씨는 “손님의 입장으로는 들을 수 없었던 사장님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