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점부터 언론이 대학을 평가하고 있다. 언론사 대학평가가 수험생, 학부모에게 영향을 주면서 대학도 언론사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중앙일보가 대학평가로 꽤나 재미를 보자 다른 신문사도 줄지어 대학평가에 뛰어들었다. 고함20도 염치없이 이 축제에 밥숟가락 하나 올리고자 한다. 

다만 논문인용지수, 평판, 재정상황으로 대학을 평가하는 방법을 거부한다. 조금 더 주관적이지만 더 학생친화적인 방법으로 대학을 평가하려 한다. 강의실에선 우리가 평가받는 입장이지만 이젠 우리가 A부터 F학점으로 대학을 평가할 계획이다. 비록 고함20에게 A학점을 받는다고 해도 학보사가 대서특필 한다든가 F학점을 받는다고 해도 ‘훌리건’이 평가항목에 이의를 제기하는 촌극은 없겠지만, 고함20의 대학평가가 많은 사람에게 하나의 일침이 되길 기대한다. 

대학 총장은 누가 어떻게 되는 것일까. 경험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분명히 총장은 학생이 뽑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가 대학 총장의 선출 방식을 조사한 결과, 73개의 사립대 중 51개 대학은 이사회가 대학 총장 선임을 전담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38개의 국립대학은 모두 총장 직선제 폐지로 학칙을 개정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학생이 직접 총장을 뽑을 기회가 있기는 할까.


이번 <고함20 대학평가>의 주제는 대학의 총장 선거다. 국가는 국민에게 세금을 제공 받고, 국가의 통수권자를 국민이 직접 뽑도록 한다. 선거라는 제도를 통해 다수가 다수에 의한 지배를 합리화하는 것이 민주주의 아니던가. 그런데 대학에서는 민주주의의 간단한 원리가 통하지 않는다. 등록금 의존율이 국립대는 40%에 육박하고, 사립대는 70%를 넘나든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등록금을 꼬박꼬박 받아내지만, 대학 총장을 뽑는데 학생들의 투표권은 일절 보장하지 않는다.  A-F의 평가도 P/F의 평가도 아니다. 그냥 낙제점을 받은, 총장 선거에 있어서는 학고를 걱정하는 대학들을 추려서 평가했다.

ⓒ 연세춘추 그림 이옥남

 

총장 뽑는 48명 중 학생위원은 단 한 명? -제주대·충북대
 

제주대는 직선제를 폐지하고, 올해 처음으로 간선제로 총장선거가 이뤄졌다. 적격심사를 거친 총장 후보를 추천관리위원회에서 선출하는 것이다. 추천위원회는 학내외 48명의 인사로 구성됐다. 주목할 점은 48명 중 학생대표는 단 1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학내위원은 교원이 31명, 교직원이 4명인 것을 생각할 때 초라한 숫자다. 학외위원 12명 중 총학생회의 추천을 받은 인사 역시 한 명이다. 48명 중 학생 위원이 한 명이라는 사실은, 총장선출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제대로 수렴되지 않으리라는 뻔한 결론으로 이어진다.


충북대는 제주대와 한 쌍을 이룬다. 23년 만에 총장 직선제를 폐지한 충북대도 제주대와 마찬가지로 추천위원회 구성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11일 확정한 추천위원회에서 학생대표는 제주대 추천위원회와 마찬가지로 한 자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교수들이나 총동문회나 교직원들은 추천위원회에서 각자의 비율을 높이는 데에만 목소리를 높일 뿐이다. 그들은 학생들의 자리가 하나라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두 학교는 선거 과정에서 공정성 시비가 불거진 것 역시 닮았다. 제주대의 경우 허향진 후보에 대한 ‘비방글’이 30여명의 교직원에게 이메일과 SNS로 발송되자, 허향진 후보가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충북대도 마찬가지로 타 후보에 대한 격렬한 반대의사 표명이 논란이 됐다. 일부 교수들은 김승택 현 충북대 총장의 재임을 막기 위해, 공개서한을 보낸다거나 연임에 도전할 김승택 후보를 제외한 후보자들이 '연대'하기를 제안하기도 했다.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다름없는 것이다.


이사회를 못 믿겠다고? 그래도 어쩔 수는 없을 거야 -한동대
 

한동대는 후보자를 물색하는 과정부터 말썽을 부렸다. 무려 19년을 재임한 김영길 한동대 총장이 내년 1월 퇴임한다. 이에 이사회는 김영길 총장의 후임을 찾기 위해 총장인선위원회를 구성했다. 5명의 법인 이사와 2명의 외부 인사가 총장인선위원회의 전부이다. 그렇다. 놀랍게도, 한동대 이사회는 총장 후보를 교수와 학생들의 의견을 일체 듣지 않고 찾을 요량이었다. 이에 한동대 교수협의회와 총학생회는 교수와 학생을 배제한 총장인선위원회에 반대하고 있다. 


게다가 김 총장이 퇴임 이후에도 명예총장으로 남아 학내에서 역할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이 공개되자 우려는 극에 달했었다. 교수진들과 총학생회는 물론 총동문회까지 총장 선거의 문제를 지적했다. 결국 김 총장은 퇴임하고 명예총장직에 남으려던 계획을 포기했다고 밝혔다. 김 총장이 명예총장직에 대한 포기 의사를 표명했지만, 이사회는 여전히 학생들과 교수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아 갈등은 좀처럼 식지 않는 상황이다. 한동대의 커뮤니티인 인트라넷과 디시인사이드 한동대 갤러리 등에서 총장 선거와 관련된 논쟁 역시 계속되고 있는 실정이다. 

ⓒ 디시인사이드 한동대 갤러리 갈무리


등록금으로 장례식을 해도 총장직은 연임 -청주대
 

청주대는 11월 13일 김윤배 총장의 네 번째 연임을 최종 선고했다. 하지만 바로 전날까지 교수회는 김윤배 총장의 연임에 반대하는 의사를 표명했었다. 교수회는 공개한 성명에서 "9월 실시한 학내 현안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전체 응답자의 90.3%가 ‘소통 부재’와 ‘리더십 부족’ 등의 이유로 김윤배 현 총장의 네 번째 연임을 반대했다"고 밝혔다. 교수회는 무엇보다 총장 선출을 이사회가 전담할 것이 아니라, 전체 구성원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무기력했다.


교수회가 학내 전체 구성원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일리가 있는 말이다. 청주대는 총장을 이사회가 2명을 추천하고, 의결을 거친 후 이사장이 최종 임명하는 방법으로 선출한다. 교직원이나 교수, 학생들이 낄 틈이 전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연임이 확정된 김윤배 총장의 경우, 청주대 이사회이자 청주대를 설립한 청석학원과 혈연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김윤배 총장은 청석학원 설립자와 그의 아들의 추도식과 장례식, 묘소 보수공사 비용을 교비에서 지출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을 일으켰다. 학생들의 등록금을 총장 명의로 학생들과 전혀 무관한 곳에 지출한 셈이다. 

ⓒ 청주대 김윤배 총장의 등록금 운영은 확실히 말을 잇지 못하게 만든다.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라는 말은 고전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구절이 됐다. 최근의 총장 선출 과정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학생사회의 역할 부재다. <고함20 대학평가>에서 다룬 제주대와 충북대의 경우를 보자. 총장 선출 기구인 추천위원회는 48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학생위원은 단 한 명이다. 학생위원의 존재는 구색을 갖추기 위한 존재, 그 이상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한동대나 청주대의 사례에서는 이사회와 이사장이 전적으로 총장을 선출한다. 


대학 총장이란 대학 구성원의 동의와 합의로 선출된 자가 아니다. 이사회가 뽑은 자를 '앉히는' 자리다. 어디선가 본 장면이다. 회사 CEO를 이사회가 선출하는 모습과 똑 닮았다. 회사의 CEO는 이사회의 입맛에 맞추어 일한다. 이사회의 입맛이라는 건, 기업의 성공과 확장을 통한 더 많은 이윤창출이다. 대학 총장이 추진하는 정책도 그렇다. 학교의 더 많은 '성공'과 '확장', 그것이 현재 대학 총장의 목적이다. 이쯤 되면 대학 ‘총장’이 아니라, 대학 ‘CEO’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총장 직선제 : 대학 총장을 대학 교수들이 직접 선출하는 제도. 1980년대 민주화의 영향으로 대학 총장의 선출 역시 민주적으로 해야한다는 당위에서 생겨났다. 

총장 간선제 : 2010년 이후 교육과학기술부는 총장 직선제가 대학 교수들의 파벌을 야기한다며 폐지하도록 했다. 하지만 총장 직선제가 폐지되고, 추천위원회 등의 신설 기구를 통해 총장 간선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기존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