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들은 모두 대학교에 처음 들어온 새내기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 대학에 들어가는 그 순간, 합격의 기쁨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만을 가졌던 사람도 있겠지만, 목표를 100% 달성하지 못한 패배의식과 함께 대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길고 긴 첫 여름방학이 별 일 없이 지나가고 나면 몇몇 (어떤 경우에는 꽤나 많은) 동기들이 눈에서 사라지기 시작한다. 친구들은 그가 ‘반수하려고 재수학원 반수생반에 등록했다고 하더라’와 같은 이야기들을 수군거린다.

보통 친구들과 함께 얘기하면서는 “걔는 반수하고 싶은가보지, 뭐”라고 시크하게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많은 사람들은 ‘나도 반수하면 좀 더 상위 대학으로 옮길 수 있지 않을까?’, ‘천천히 학점 따면서 편입이라도 해 볼까?’라는 생각을 떠올렸을 것이다. 필자가 새내기 때 계속 했던 생각처럼 말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2학기를 맞은 캠퍼스는 많은 학생들을 떠나보냈다. 나름대로 인생에서 매우 큰 결정을 한 학생들은 아침마다 학교 대신 반수학원, 편입학원, 독서실로 등교하고 있다.


▲ 대학 도서관에서도 종종, 수능 교재가 펼쳐져 있는 풍경을 찾아볼 수 있다.


목표대학 못 간 아쉬움에 새내기 생활을 도서관에서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1학년인 이지형(가명, 20)씨는 2009년도 입시 결과가 나온 순간, 반수를 결정하게 되었다. 사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도 좋은 학과이지만, 아쉬움이 남아 한 번 정도 더 노력하기로 마음먹었다.

“사실 고등학교를 다니는 3년 동안 서울대학교만을 목표로 공부해 왔어요. 수능이나 내신 성적이 나빴던 것도 아닌데 논술이나 면접에서 떨어지니까 오기도 생기고, 허탈한 기분이 들었어요.”

그는 반수를 위해 1학기가 시작된 3월부터 대학 공부와 수능 공부를 병행했다. 아침부터 학교 도서관에 들어가 꾸준히 공부를 하고 매일 밤 10시가 되어서야 공부를 마쳤다고 한다. (실제로 대학 도서관의 자리들을 보다 보면 종종 수능대비 교재를 붙들고 있는 학생들을 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1학기 때는 반수도 반수지만, 대학 생활이라는 걸 흠뻑 느껴보려고도 나름대로 노력했어요. 수업도 충실히 듣고, 시험도 보고, 많은 사람들도 만났구요. 대학생활에 대한 경험을 토대로, 내년에 새로운 곳에 간다면 좀 더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네 번의 수능을 보게 한 ‘비SKY’에 대한 비합리적 차별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1학년의 유도영(23)씨는 수능을 네 번이나 봐서 현재의 학과에 진학했다. 재수 끝에 연세대학교 공학계열에 진학한 그는 적성상의 문제로 자퇴하여 인문계열로 진로를 바꾸어 성균관대 사회과학계열에 합격했다. 그리고 작년에는 휴학을 하지 않고, 과 아르바이트를 통해 다진 실력으로 한 번 더 입시에 도전했다.

“주위 친구들이 소위 ‘SKY’를 많이 다니거든요. 그래서 열등의식 같은 것도 있었고, 수능등급제로 인해 2008년 수능에서 실제 점수에 비해 낮은 등급을 받는 피해자가 되어 아쉬운 생각도 많이 들었어요. 일단 사회에서 'SKY'와 ‘비SKY'에 대한 통념이나 차별이 생각보다 너무 심하기도 하구요.”

그는 충분한 실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일의 컨디션 등의 상황으로 목표대학에 합격하지 못한 경우에는 반수를 하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고 말하였다. 다만 실력이나 노력이 없음에도 불구, 단순하게 비교당하는 게 싫어서 무턱대고 ‘나 반수할거야’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하였다.


언제나 환히 켜져 있는 편입학원의 불빛

‘김영편입학원’, ‘광수편입학원’ 등 갈수록 편입학원의 개수도 광고도 많아지고 있다. 대학가 어딘가에는 틀림없이 대학생들을 유혹하는 편입학원들이 존재한다.

소위 ‘지잡대’에서 지방 주요대학으로, 지방 주요대학에서 ‘인서울’대학으로, ‘인서울’대학에서 다시 연고대로 편입하는 사람들의 ‘성공담’을 보며 이번 학기에도 많은 사람들이 휴학을 결정했다.


▲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편입학원, 그리고 편입학원 광고


뿌리 깊은 대학 서열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이렇게 반수와 편입에 대학생들이 목을 멜 수밖에 없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듯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대학 서열화이다. 고등학생들이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동건홍 국숭세단……’이라고 주문을 외우듯 입학 커트라인별 대학 순위를 외우고 있는 풍경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어느 대학을 가느냐에 따라 주변의 대접부터 달라지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 때도, 취업 후에 좀 더 나은 조건을 찾아갈 때도 학벌이 항상 발목을 잡는 사회. 그 사회 속에서 대학생들은 자신들의 청춘을 포기하고, 다시 한 번 학벌 사회의 상류층으로 편입하기 위해 좁은 책상 위에 입시 교재를 펼쳐 놓는다.



뿌리 깊은 대학 서열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사라지지 않을 가을학기 초의 씁쓸하디 쓸쓸한 풍경.

그렇게 올해도 친구들이 학교를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