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말하는 지방대생의 엘리트주의자를 향한 일갈

강원도 춘천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닭갈비가 유명한 지역’이라고 생각하는 곳. 1년 전 나 또한 춘천하면 닭갈비만 떠오르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지금 나에게 춘천은 닭갈비만의 도시가 아니다. ‘나’라는 사람을 설명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된 춘천은 내가 다니고 있는 대학이 위치한 곳이다. 나는 소위 ‘지방대’에 진학한 학생이다.

기자가 현재 다니고 있는 대학



일단 지방대생이 되고 나니 학교에 가기 전부터 사람들의 시선이 달라졌다. 입학하기도 전부터 나의 소속으로 나를 평가하기 시작한 것이다. 수능이 끝난 그해 12월 나는 생애 처음 아르바이트를 하러가서 ‘지방대 나와서 기자되기 힘들다던데..’라는 말을 들어보기도 하였고 설을 맞아 방문한 친척집에서 ‘그 과는 관심 있어서 간거냐?’라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또한 대학을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나의 소속을 밝히면 열의 아홉은 뜨뜻미지근한 시선과 억양으로 ‘아~’라는 감탄사를 짧게 내뱉을 뿐이었다.

다른 이들의 생각이 어떠하든 괜찮았다. 낙오자라는 낙인을 찍고 바라보는 그들의 연민의 눈빛도 견딜 만 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열심히 노력한다면 나의 소속은 벽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남들이 뭐라 하든 어떻게 바라보든 나에게 주어진 길을 열심히 가기만 하면 된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내 생각일 뿐이었을까? 나의 소속이 지방대이기 때문에 세상의 차별이 나의 노력으로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친구와 내가 기획자가 되어 만든 독서토론 모임에서 나는 내 인생 최고의 엘리트 주의자를 만났다. 그리고 그는 아래와 같은 발언을 서슴없이 했다.

“나는 어떤 사람 대학을 보면 그 사람 수준을 안다. (서울 상위권 대학 두 곳을 짚어주며) 거기로 편입해라. 그 정도는 해야 좋다. 아니면 지금 다니고 있는 대학이 병원이 여러 개니까 간호학부로 전과해라. 병원 있으니 그건 좋다. 지방대 다니는 너희들과 같이 모임을 하려한 이유는 바닥까지 간 사람들 도와주고 싶었다. 서울대나 성대 다니는 애들은 머리에 든 거 많은데 지적하면 뭐라고 답하냐, 그런데 지방대생들은 지적 못할 것 같아서 같이 한거다”

쓰나미 같이 밀려들어 온 그의 발언들은 한마디로 어이 상실이었다. ‘바닥까지 떨어졌다’고? 그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편견이었다. 지방대생들을 바라보는 그만의 관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그러한 관점을 일반화시켜서 우리를 바라보았다. 마치 지방대생들은 바닥까지 떨어진 기분을 느껴야만 하고 자신의 소속을 부정하고 싶어 해야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 듯 말이다.

사회에 그 엘리트주의자처럼 지방대생을 ‘바닥까지 떨어진’ 사람들로 보는 시선은 없다. 하지만 지방대 소속이 되면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은 존재한다. 축구경기에서 옐로우 카드를 받고 뛰는 선수의 위태위태함을 지방대생들이 가졌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선들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소속에 만족하는 지방대생들은 자기위로를 하고 있는 거라 여긴다.

엘리트주의자에게 이 말을 해주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 지방대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은 ‘자신이 바닥에 떨어졌고 나의 소속을 부정하고 싶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울권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과 그들은 다른 점이 없다.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그들도 토익을 준비하고 자기계발을 하고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그 자리에서 누구보다도 열심히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서울이 아닌 다른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것뿐이다.

서울이 아닌 지방에 있는 대학을 다니는 것은 다른 것일 뿐이다. 그 이상의 의미 부여는 없어야 한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내 생에 최고의 엘리트주의자에게 <친절한 금자씨>의 명대사를 보낸다. ‘너나 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