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헌 이후 우리나라 공식적인 청문회는 1988년 등장했다. 청문회는 국회에서 주요 안건 심사에 필요한 증인과 참고인, 감정인을 신문하여 증언 청취와 증거 채택을 얻어 내는 것이다. 청문회에서 발언하는 내용은 법적 효력을 지니기 때문에 허위 사실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청문회는 해당 상임위원회나 특별위원회의 의결을 거치고 청문회 5일 전에 안건, 일시, 장소, 증인 이름을 공시하며 진행과정의 공개가 원칙이다.


2000년 인사청문회법 제정으로 인사청문회가 공식적으로 등장했다. 청문회는 안건이 중심이라면 인사청문회는 임용 내정자의 국정 수행능력을 검증하고 결격 사유를 가려내 대통령 직속 인사권을 견제하기 위한 데 목적이 있다. (위키 백과 출처)

 
지금까지 1988년 11월 5공화국 비리와 관련된 일해(日海) 청문회를 시작으로 20여년 넘게 청문회가 진행되어 왔다. 청문회 실시 이후 후보자들의 논문 표절, 위장 전입, 이중 국적, 병역 문제, 사범 문제, 가족 문제(혼외정사) 등 진실 공방이 이어졌고 결격 사유로 낙마하는 경우도 비일비재 했다. 반대로 청문회로 주가가 부상한 인물들도 있다. 청문회의 경우 여권 인사를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여권 청문 주자보다 야당 인사의 질문이 날카롭고 매섭다. 이러한
청문회는 일약 스타를 낳기도 했고, 누군가가 일생 쌓아올린 업을 무너뜨리기도 했다.

 
* 청문회로 웃은 사람들

  노무현 전 의원

 





노무현 의원은 1988년 당시 11월 제5공화국 비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전 국가 안전 기획부장 장세동, 전 청와대 경호실장 안현태, 전 법무부장관 이종원, 현대그룹 회장 정주영에게 치밀하고 날선 어법으로 상대를 논박해 대국민적 주목을 받게 된다.


죄가 없다고 주장하는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명패를 던져 국민의 관심을 받았다. 후에 자서전에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아니라 당 지도부의 무능력함에 분개해 명패를 던졌다고 회고하고 있다. 노무현 의원은 청문회를 계기로 대국민적 정치 스타가 된다. 



 

 안상수 의원

 

DJ정부시절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의 안상수 의원은 정부의 ‘옷로비 인사청문회’, ‘조폐공사 청문회’, ‘한빛은행 청문회’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 주목 받았다.

 


1999년 5월 당시 검찰총장 부인 연정희씨가 외화밀반출 혐의를 받고 있던 신동아그룹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에게 1998년 말 고급 옷을 받았다는 소문이 보도 되면서 청문회가 열리게 되었고, 안상수 의원은 추궁 끝에 거짓을 파헤치고 특검을 도입하는 계기를 이끌어내 주목 받게 된다.


이에 비해 청문회로 내정을 앞두고 낙마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장상 최고위원




 


2002년 국무총리 내정자였던 장상 후보는 자녀 위장 전입과 자녀 병역 비리 의혹 그리고 투기 의혹으로 자진 사퇴하였다.

 


천성관 검찰청장 내정자



 

 

천성관 검찰청장 내정자는 자녀 병역 과정 의혹과 스폰서 의혹, 투기 의혹과 지인과의 부적절한 금전 거래 의혹으로 사퇴하였다.